우리가 집에 걸어놓는 그림들은 대개 이런 순서를 따르게 된다. 당초 벽을 차지하던 것은 부모님이 고속버스 휴게소나 도심 지하도 등에서 싸게 샀다고 자랑하는 이른바 '이발소 그림'들이다. 그것들을 밀어낼 수 있는 것이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아트포스터들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내딛으려 할 때 판화가 떠오르지만, 막상 판화 한 점 사서 걸기가 쉽지는 않다. 원화는 더 말할 것도 없다.올해로 9회를 맞은 '서울판화미술제 2003'이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11일 개막, 19일까지 열린다. 이 미술제는 사실상 세계 유일의 판화 전문 미술시장이다. 10만 원에 살 수 있는 젊은 작가의 판화부터, 점 당 1,000만 원 하는 피카소의 에디션아트 도자기까지 다양한 작품들이 나온다.
"IMF 이후 일반 미술 애호가들이 판화 한 점 구입하기도 힘든 형편이 된 게 우리 미술시장의 현실이지만, 서울판화미술제에서는 50만∼60만 원이면 썩 괜찮은 작품을 고를 수 있도록 준비했다"는 것이 한국판화미술진흥회장인 엄중구 샘터화랑 대표의 말이다.
갤러리현대 갤러리아트사이드 금산갤러리 동산방화랑 박영덕화랑 예맥화랑 등 국내 21개 주요 화랑과 9개 판화공방이 국내 165명, 해외 10명 작가의 평면·입체 작품 1,000여 점을 출품했다. 김창열 박서보 서세옥 이우환 등 중진과 김점선 남궁산 사석원 오이량 이기봉 장혜용 등 중견,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폭넓게 선택할 수 있다. 해외 작가로는 파리에 있는 화랑인 갤러리 드 리가 피카소, 니키 드 생팔, 아르망 등의 입체 에디션을 출품한 것이 눈에 띈다. 피카소 도자의 경우 1작품 당 250점 내외의 에디션을 찍는다.
관객들의 판화에 대한 관심을 북돋고 다양한 멀티플 작품을 보여주기 위해 평면, 조각, 도예, 사진은 물론 김준, 최영철 등 8명의 영상작품을 소개하는 애니메이션 특별전도 열리며 디지털 판화전, 판화 제작과정을 직접 소개하는 전시도 기획됐다. 리노베이션 후 말끔해진 한가람미술관은 오전11시부터 오후8시까지 개관한다. 문의 (02)518―6323
/하종오기자 joha@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