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 출판사에서 나온 '역사신문'을 살피다 보니, 1914년 10월10일 조선인 팀과 일본인 팀 사이의 야구 시합이 끝난 뒤 양측 응원단 사이에 난투극이 벌어졌던 모양이다. 오성학교의 조선인 팀과 용산철도구락부의 일본인 팀이 지금의 서울 동대문 운동장 근처 훈련원에서 벌인 이 경기는 8회까지 일본 팀이 13 대 10으로 이기고 있다가 9회 말 마지막 공격에서 조선 팀이 분발해 14대 13으로 역전시켰다고 한다. 용산철도구락부 팀이 진 데 실망한 일본인 관중이 이내 운동장에 난입해 오성 학교 선수들을 포위하고 폭행을 가하자 조선인 관중이 여기 맞서면서 편싸움이 벌어졌다는 것이 '역사신문'의 설명이다.현대 사회에서 스포츠는 일종의 모의 전쟁이다. 그래서 여느 전쟁처럼 스포츠도 민족주의의 분출구가 된다. 한국인의 민족주의는 그 자체로도 유다른 바 있지만, 20세기 전반에 겪은 고난의 기억 때문에 그 대상이 일본일 때 특히 표나게 발현한다. 일본에게만은 질 수 없다는 것이 지금도 남북 가릴 것 없이 대다수 한국인들이 지닌 정서다. 나라 잃은 시절에는 더욱 그랬을 것이다. 일본에 대한 이런 경쟁심은 두 나라의 실력이 엇비슷한 축구 같은 종목에서 더 두드러진다.
스페인 레알 소시에다드에서 뛰고 있는 이천수 선수도 사실은 이런 보이지 않는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레알 소시에다드의 근거지인 바스크 지방은 분리주의가 매우 강한 곳이다. 무장독립운동단체 '조국 바스크와 자유'(ETA)는, 지금은 활동이 비교적 뜸하지만, 1990년대까지도 스페인 북부와 프랑스 남부 지역을 공포에 떨게 한 바 있다. 반면에 레알 소시에다드의 적수이자 세계 최강 팀이라 할 레알 마드리드는, 예전의 후원자가 독재자 프랑코였던 데서도 드러나듯, 강한 마드리드 중심주의를 상징하고 있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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