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거제 가조도흔적 없이 사라진 어장, 폭삭 주저앉은 집, 거대한 쓰레기 더미.
태풍 매미가 지나간 지 한 달. 경남 거제도의 부속섬 가조도에는 그날의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정부의 특별재해지역 지정과 응급 복구율 100%라는 경남도 재해대책본부의 발표는, 응급복구율 50%에 쓰레기 수거율 20%인 이곳 주민들에게 먼 나라 이야기일 수밖에 없었다.
피조개, 미더덕 양식으로 짭짤한 소득을 올렸던 8개 마을 1,400여 주민들은 "이 것이 사람 사는 꼴이냐"며 한탄했다. 가조도는 가옥 230채가 물에 잠기고 23채가 부서졌으며 어선 90척이 침몰됐다. 선착장도 9곳이나 무너졌다.
선착장 첫 마을인 진두마을은 가옥 12채 가운데 11채가 침수돼 피해가 특히 컸다. 주민 윤정섭(55)씨는 "여섯 식구가 살던 집이 내려앉았다. 컨테이너에서 먹고 자지만 충격으로 쓰러진 노모는 아직 몸을 추스르지 못하고 있다"며 긴 숨을 내쉬었다.
인근 창촌마을에서는 굴삭기가 굉음을 내며 바다 쓰레기를 퍼올리고 있었다. 폐 그물 더미에서 쓸만한 것을 찾으려고 주민들은 손을 바삐 놀리고 있었다. 열 여섯에 섬으로 시집왔다는 조금한(76) 할머니는 "이런 날벼락은 처음"이라고 탄식한 뒤 이내 돋보기를 고쳐 쓰고 실타래처럼 얽힌 그물의 매듭을 풀어 나갔다.
40가구 100여명이 사는 계도마을도 마찬가지. 집이 내려앉은 이기조(56)씨 등 2가구는 마을회관에서 기약 없는 피난생활을 하고 있으며 집이 부서진 이쌍림(73) 할머니는 아예 고향을 떠버렸다. 이장 이재형(48)씨는 "물에 잠긴 집이 복구가 안돼 겨울을 어떻게 넘길지 막막할 따름"이라고 난감해 했다.
계도마을에서 신교마을로 이어지는 해안도로는 포장 도로의 절반 가량이 쓸려나갔으며 나머지도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패어 나갔다. 컨테이너에서 지내고 있는 공영자(69) 할머니는 "주방 기구가 설치되지 않아 내려앉은 집 한켠에 가스레인지를 두고 밥을 지어 먹지만 비가 오면 굶어야 할 처지"라고 말했다.
섬을 메운 쓰레기 4,000여톤은 주민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 실전마을 김옥명(45)씨는 "폐어구 같은 쓰레기가 마을을 덮고 있어 억장이 무너진다"고 침울해 했다. 주민들은 당국의 늑장 행정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다. 실전마을 이정명(48)씨는 "보상금을 준다며 통장 계좌번호를 적어 간 지 한달이 다 돼 가는데 지금까지 보상금 한푼 못 받고 있다"며 당국을 성토했다.
가조도의 응급 복구를 책임지는 거제시 해양수산과 남선우(46)씨는 "섬 지역의 특성상 연말이 돼야 응급 복구가 마무리 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가조도(거제)=이동렬기자 dylee@hk.co.kr
강원 정선군 봉정리
태풍 매미로 12일간 고립생활을 했던 강원 정선군 북면 봉정리. 태풍이 할퀴고 간 지 한 달이 지났지만 갈기갈기 찢긴 상처는 여전했다. 100여가구 가운데 17가구가 수해를 당한 마을 주민들은 아직도 축축한 방안에 신문지와 스티로폼을 깔고 지내고 있었다. 물에 젖은 벽지는 썩어 악취를 풍기지만 벽이 덜 말라 마당에 내놓은 살림살이를 정리하지도 못한 채였다.
골지천을 따라 임계면 송계리와 북면 여량리를 잇는 2차선 포장도로는 곳곳이 패어 자동차가 지날 때마다 뿌연 흙먼지를 토해냈다. 구부러진 가드레일 옆으로 농부들이 벼를 말리려고 널어놨으나 쭉정이가 대부분이다.
윤태열(74)씨는 "털어보나 마나 쭉정이지만 논에서 썩히는 것은 더욱 가슴 아프고 내년 농사를 지으려면 잘라내야 한다"며 쓰러진 벼를 일일이 베어내고 있었다. 도로변 옥수수밭에서 쓰러진 옥수수대를 소먹이로 쓰겠다며 묶고 있던 김재수(65)씨는 "올해 양배추값이 좋았는데 침수돼 팔지 못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나마 이재민들에게 위안이 되는 것은 각지에서 찾아오는 자원봉사자들. 주민들은 "자원봉사자들이 있어 희망을 잃지않고 수해복구, 가을걷이에 나서고 있다"며 고마워했다. 8일에도 마을에는 수원시 화산교회 신도 10여명이 달려와 복구작업에 구슬땀을 흘렸다.
/정선=곽영승기자 yskwa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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