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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 마장초등학교/ 외국어 배우고… 수영 등 특기교육… 돌아오는 학교로 폐교극복 산골초등교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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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 마장초등학교/ 외국어 배우고… 수영 등 특기교육… 돌아오는 학교로 폐교극복 산골초등교의 기적

입력
2003.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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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쟈오∼ 쟈오∼ 하오 펑요우∼(좋은 친구를 찾아요)" 5학년 학생들이 짝꿍과 마주보고 손뼉을 치며 중국 동요를 불렀다. 중국어 교사 재중동포 김옥숙(40·여)씨가 단어가 적힌 카드를 내밀자 아이들이 "핑구오(사과)" 하며 병아리 떼처럼 입을 재잘거리고 "워아이니(사랑해요)"와 함께 하트를 만드는 몸짓은 수업이라기보다 중국어 소꿉놀이 같다. 8일 오후 경기 가평군 가평읍 마장2리 마장초등학교 5학년 교실. 14명의 학생들은 일주일에 딱 한번 있는 중국어 시간이 마냥 즐겁다. 지난 학기에 전학 온 박연수(11)양은 "영어만 공부했는데 여기선 중국어를 배우니까 자랑스럽다"며 어깨를 으쓱했다.가평읍을 벗어나 차로 5분, 옥녀봉 자락에 살포시 앉은 마장초등학교는 아담한 산골학교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야 어디 내 놔도 손색 없지만 즐비한 학원과 최첨단 교육시설 등 소위 교육환경이 좋다는 도회지 학교와는 비교가 안될 터.

그런데도 교사나 학생이나 심지어 학부모까지 학교 자랑이 이만저만 아니다. 학생이 없어 다른 시골 초등학교는 줄줄이 문을 닫지만 "우리 학교는 돌아오는 학교, 가고 싶은 학교"란다. 풀어 말하면 "폐교가 될뻔한 학교에 전학간 아이가 돌아오고 도시에서 아이들이 전학 오는 기적이 벌어졌다"는 것.

지금이야 전교생 122명에 교사가 8명이나 되지만 2000년 5월엔 전교생이 고작 32명, 교사는 3명으로 폐교 대상이었다. 1924년 개교해 전교생 400여명에 분교까지 거느렸던 유구한 학교 역사에 비하면 볼품없는 몰락이었다.

이유야 뻔했다. "내 아이 공부만큼은…" 하는 마음 간절한 시골 학부모들이 도시로, 그것도 안되면 37개 학급을 거느린 읍내 가평초교에 아이들을 쑤셔넣었기 때문이다.

폐교위기에 놓이자 교직원과 학부모가 모여 비상대책회의를 열었다. 무엇보다 "첫 부임(99년)한 학교를 내 손으로 문 닫을 수 없다"던 최일성 교장의 헌신이 학교를 살렸다.

2000년 7월 최 교장은 학원가를 직접 발로 뛰어 영어 원어민 교사를 모셔왔다. 두개 학년이 한 학급인 복식수업 때문에 수업 질이 떨어진다는 학부모들의 의견에 따라 퇴직한 동료 교사를 "좋은 일 좀 해달라"고 설득해 담임을 맡겨 6학급으로 복원했다. 또 도교육청을 찾아가 손 싹싹 비빈 끝에 컴퓨터 43대를 얻어 전교생에게 지급하고 책상은 컴퓨터 책상으로 바꿨다. 지금도 전학 온 아이에겐 150만원을 들여 컴퓨터와 책상을 마련해주고 있다.

이뿐이 아니다. 읍내 스포츠센터 사장과 독대해 한달 수강료 20만원을 7만원으로 낮춰 학생 30명에게 수영강습의 길도 열어줬다. 도서관을 만들 수 없자 계단 통로 등 빈 공간마다 의자를 놓고 책을 꽂아뒀다. 최 교장은 "교사 급여, 수강료와 빤스(수영복)까지 학교 돈으로 냈다"고 했다. 덕분에 학교 비품은 종이 한 장까지 아껴야 했지만 "돈은 쓰기 나름"이라는 게 최 교장의 철학이다.

내친김에 2001년엔 놀이터를 손질해 학교 살리기의 밑거름이 될 유치원(정원 20명)도 열고 기왕 어렵게 모신 원어민 교사 덕 보자는 생각에 동네 어르신 등 주민들을 상대로 외국어 강좌까지 열었다. 주부 박영예(36)씨는 "아이들이 중국어 하며 노는 게 보기 좋아 시작했는데 믿음이 간다"고 했다.

씨는 뿌리면 열매를 맺는 법. 외국인 교사와 뛰놀며 영어를 배운 아이들은 "외국인 만나도 겁 안 난다"고 말하고 "1학년은 컴퓨터 타자속도가 150타, 6학년은 450타"라고 자랑이다. 또 수영을 배운 아이들은 지난해 각종 대회에서 메달을 휩쓸어 왔다. 마장초등학교에 대한 소문은 꼬리를 물고 퍼졌다. 교훈(校訓)마냥 '가정처럼 좋은 학교'에 아이들이 돌아오기 시작해 학생 수가 4배로 늘어 교사(校舍)도 2층으로 증축하고 스쿨버스도 대형으로 바꿨다.

내년 8월 정년을 앞두고 성공사례 발표 의뢰까지 받은 최 교장이지만 아직 할 일이 많다. "학생이 준다고 좌절하지 말고 생각을 바꾸면 길이 열려요. 올해 중국어 교사를 초빙한 것도 나중에 긴히 쓰일 것 같기 때문입니다. 앞으론 종이공예, 플루트 등 아이들 적성 찾는 교육을 시작할 생각입니다."

/가평=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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