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다소 시들해졌지만 한동안 시청률 1위를 올랐던 TV 코미디 프로 중에 '개그콘서트'라는 게 있다. 특히 젊은이와 어린이들 사이에 인기가 있어 많은 유행어가 만들어졌고 CF에도 등장하고, 조금 과장하면 가히 '개콘 문화'라 할만 하다. 이 프로의 맨 마지막에 등장하는 코너가 '봉숭아 학당'이다. 아직도 이 프로를 본 적이 없는 사람을 위해 조금만 부연해서 설명한다.심훈의 '상록수'에서 등장하는 농촌의 야학(夜學)을 패러디한 것이 '봉숭아 학당'의 출발이다. 거의 모든 출연진이 나와 제각기 개성 있는 학생의 역할을 맡는다. 선생님이 '사랑'이니 '인생'이니 하는 주제를 하나씩 내걸고 수업을 시작하고, 그리고 수업은 항상 엉망으로 끝난다. 코미디니까 당연히 그래야 하듯이 한사람씩 돌아가며 한바탕 입과 몸으로 '개인기'를 펼치며 웃음을 자아낸다. 가끔씩 출연진이나 캐릭터가 바뀌기는 하지만 매주 거의 똑 같은 상황이 연출되는데도 여전히 '봉숭아 학당'은 살아있다.
난데 없이 TV 프로를 선전하려고 말을 꺼낸 게 아니다. 얼마 전부터 편집국의 간부 한 사람이 "요새 정부가 하는 것을 보면 봉숭아 학당을 보는 것 같아"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마 김영진 농림부 장관이 새만금 사업에 대한 법원의 판결에 불만을 표시하며 불쑥 사표를 내고 사무실을 박차고 나간 7월 중순께가 아니었나 싶다. 그 말을 듣고 그저 웃기만 했으나, 속으로는 '탈권위를 표방한 정부이니 조금 흐트러져 보이는 것이지'라며 동의하지 않았다. 꽉 짜여진 강요된 질서 속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보다 괜찮지 않은가,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최낙정 해양수산부 장관이 교육자들을 모아놓고 "놈"이라 칭했던 것이 알려진 2일, 그 간부가 또다시 "정말 봉숭아 학당이군"이라 했을 때는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태풍 매미가 한반도에 닥친 날 대통령이 뮤지컬을 관람한 것을 두고 '노비어천가'(盧飛御天歌)를 읊어댄 것이나, 퇴임식을 하며 부하직원들에게 "헹가레 한번 쳐달라"며 버젓이 신문지면에 사진이 실린 것은 정말 코미디감이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노무현의 봉숭아 학당'에 출연한 사람이 어디 최 장관뿐이랴.
주변으로부터 "제발 말을 좀 아끼시라"는 충고를 받고 있다는 노 대통령의 예는 들지 않겠다. 정치권을 쓰레기에 비유, "재활용품을 골라내야 한다"고 말한 뒤 "좀더 있다 나가라"는 대통령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퇴한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에, 이라크 파병 문제에 관해 누구보다도 말조심을 해야 하는데도 버젓이 자신의 반대 발언이 신문에 대서특필되자 "술 먹고 한 소리를 그렇게 쓰면 되나"라고 한 유인태 정무수석도 있다. 또 최근 들어서는 "설사 김철수라고 하더라도 처벌할 수 있겠나"라며 본분을 망각한 채 수사에 영향을 주는 말을 한 강금실 법무부 장관도 있고, 국가정보원이 마치 다른 나라의 정보기관인 양 "(송두율씨에 관해) 분명하게 드러난 것이 없다"고 말한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도 있다.
돌아가며 한 사람씩 나타나 제멋대로 아무 말이나 불쑥 하고, 그러면서 국가적 현안들은 해결되는 것 없이 그냥 말만 무성한 게 어쩌면 그렇게 '봉숭아 학당'을 닮았는지. 미국의 백악관을 소재로 한 드라마 '웨스트 윙'을 볼 시간이 있으면 한번쯤 일요일 저녁에 시간을 내 '개그콘서트'를 보는 것도 그다지 큰 시간낭비는 아닐 듯 싶다.
신 재 민 정치부장 jmnew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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