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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첫걸음 뗀 한중일 안보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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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첫걸음 뗀 한중일 안보협력

입력
2003.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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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3' 정상회의 참석차 발리를 찾은 한·중·일 세나라 정상은 7일 별도의 정상회담을 가진 후 14개항에 이르는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1999년에 시작돼 5회째를 맞은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 처음으로 3국 공동선언이 나온 것이다.3국은 군축과 관련한 협력을 강화해 대량파괴무기(WMD)의 수출통제를 포함한 정치·외교·행정적 조처를 취하기로 합의했으며,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평화적 노력을 약속했다. 또 군사방위분야 인사의 교류협력을 증진해 나가기로 했다.

3국은 이러한 안보현안에 대한 합의 외에도 자유무역협정(FTA) 및 투자협정 체결에 관한 공동연구를 촉진하기로 하는 한편, 세계무역기구(WTO)의 협상무대와 에너지 물류 유통 정보기술(IT) 분야에서의 협력을 약속함으로써 포괄적 분야에 걸친 '동북아지역 네트워크' 구축의 시발을 사실상 선언했다. 공동선언의 협력내용을 지원하기 위한 3자위원회를 설립하기로 한 사실이 말해주듯 이번 합의는 구체적 실천을 전제로 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특히 이번 한·중·일 선언은 군사·안보적 측면에서 주목을 끈다. 불행한 과거사의 굴레를 벗지 못해 3국의 국민들간에 상호 불신이 여전히 남아있는 상황에서 서로의 안보관계를 다져 나가자는 공식적 약속이 최고지도자 레벨에서 나온 것이다.

첫째로 눈여겨볼 대목은 WMD의 수출통제에 대해 공조를 약속했다는 점이다. 이는 다분히 북한을 의식한 것으로서 북한의 핵탄두나 관련 물질이 '불순한' 의도를 가진 제3자에게 넘어가서는 안 되겠다는 인식에 대한 실천적 합의로 간주될 수 있다. 그동안 미국 주도의 핵확산방지구상(PSI)에 한·중·일 3국 가운데 오직 일본만이 참가해 온 터에 한국과 중국이 PSI의 정신에 간접적인 동의를 보낸 셈이다. PSI의 해상경계가 물샐 틈 없다 해도 대륙을 통한 핵 유출 방지는 중국의 협조 없이는 어렵다는 점에서 중국의 이번 동의는 의미심장하다.

다음으로 지적할 이번 3국 공동선언의 의의는 과거를 뛰어넘고자 하는 미래지향적인 자세에 있다고 할 것이다. 상호 안보정책에 대한 불신으로 말미암아 동북아지역 다자안보협력체 논의는 항상 공식 제도권 밖을 맴돌아온 것이 사실이다. 이번 3국 선언을 계기로 안보협의체를 결성하여 상호 군사투명성과 군비통제 노력을 제고해 나가는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한·중·일간 이번 안보협력의 시발이 한반도 및 동북아지역의 평화질서로 직결된다고 낙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세 나라는 역사 문화 인종적 측면에서 유사성이 많다고 하지만 대외정책의 이해관계에 있어서는 아직 괴리가 크다. 또 역내질서에 대한 미국의 존재가 크나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을 도외시한 한·중·일 3자 공조는 별 의의가 없다. 한국과 일본은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안보정책의 근간으로 삼고 있는 만큼 한·미·일 3자 공조가 중국과의 불필요한 갈등을 야기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한·중·일 안보협력 발전의 전제조건임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핵심 현안인 북한 핵 문제에도 같은 논리가 적용된다. 6자 회담의 당사자인 세 나라는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다짐하는 원론적 수준을 넘어 어떻게 하면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하는 적극적 처방까지 내놓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핵확산방지조약(NPT) 체제의 수호를 위해 가장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미국과의 협력을 전제로 할 때 온전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동북아지역에서 안보협력 공동체를 이뤄내는 것은 단일경제 공동체를 만드는 것 이상으로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안보관계는 경제적 이해타산의 수준을 뛰어넘어 국가안위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제 한·중·일 3국은 공히 정부차원의 리더십과 국민 차원의 공감대 마련에 진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김 태 효 외교안보연구원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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