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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생명 풀무꾼 원경선 <20> 양주 공동체 시대의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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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생명 풀무꾼 원경선 <20> 양주 공동체 시대의 개막

입력
2003.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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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후반 전국에서 개발붐이 일면서 도시지역에는 그린벨트라는 개발제한구역이 생기게 됐다. 풀무원공동체의 농장이 자리잡고 있던 부천에도 그린벨트가 둘러쳐졌다. 농장을 키울래도 키울 수가 없었는데 이 즈음 유기농을 접하고 정농회를 결성하게 됐다. 유기농법을 실천하기에 부천의 농장은 너무 좁았다.그래서 좀 더 넓은 농장으로 옮기자는 결단을 내렸다. 부지를 물색하던 중 경기 양주군 회천읍 옥정리의 현재 풀무원 농장 터에서 목장을 하고 있던 오영환씨를 만나게 됐다. 내가 꾸려온 공동체를 이미 알고 있던 오씨는 "혼자서라도 농촌운동을 하고 싶었다"며 4만평의 농장을 거의 공짜로 넘겨줬다. 그동안 모은 자금과 부천 농장을 일부 처분해 마련한 돈을 다 합해 봐야 1만평을 사들일 정도밖에 안됐지만 오씨는 4만평 농장을 넘긴 것이다.

1976년 양주로 이주한 첫해에는 식구들과 농장을 돌볼 수 있는 다른 2가족 정도만 부천에 남기고 8명이 부천에서 양주로 이전해 농사를 시작했다. 나를 비롯해 나중에 넷째 사위가 된 청년 등 남자 5명에 살림살이와 농사를 함께 할 수 있는 여자3명 등 모두 8명이었다. 8명이 그 넓은 4만평의 농사를 짓자니 첫해에는 눈코 뜰 새가 없었다. 집사람과 다른 가족들은 첫해 농사로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힌 뒤에 양주로 이주해 함께 살았다.

양주에서는 부천시절과는 다른 농사를 지었다. 부천에서는 양계와 양돈, 젖소 등이 주된 농사였지만 양주에서는 목축은 뒤로하고 채소 등 밭농사에 주력했다. 이렇게 농사의 색깔을 바꾼 것도 모두 유기농 때문이었다. 양주로 이주하기 직전 자연자원과 환경에 관한 세계적 보고서인 '로마클럽 보고서'를 접하게 됐는데 거기서 가축사료와 관련된 충격적인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전세계에서 생산되는 상당량의 곡물이 닭이나 소, 돼지의 사료로 사용되는데 이들 곡물로 생산되는 고기는 사람이 직접 그만한 분량의 곡물을 먹었을 때 내는 열량의 4분의 1에 불과하다는 내용이었다. 풍성한 식탁에 올릴 육류를 생산하기 위해 전세계의 기아를 살리고도 남을 곡류가 사실상 낭비된다는 지적에 가슴이 아려왔다.

그래서 양주에서는 양계와 양돈을 포기했다. 양계와 양돈에 쏟았던 노력은 모두 채소와 과수농사에 집중시켰다. 하지만 소는 계속 키웠다. 소도 사료를 먹긴 하지만 먹이의 절반정도는 야산에 천지로 널린 풀을 베어다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또 유기농을 하기 위해서는 퇴비로 사용할 동물의 배설물이 필수적이라 목축을 아예 포기할 수는 없었다.

양주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정착시켜갈 무렵 나에게 많은 조언을 해 준 이가 있었는데 풀무원공동체에 앞서 양주에서 공동체를 꾸리고 있던 고 문익환 목사의 동생인 문동환 목사였다. 이전에 쌍문동에서 도시공동체를 운영한 경험이 있는 문목사가 정농회 회장이던 오재길씨로부터 농장을 희사받아 '새벽의 집'을 연 것이다.

문목사는 '농업문명론'으로 나에게 특별히 감명을 줬다. '도시중심 문명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전원문명으로 옮겨가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풀무원공동체의 이상이기도 했다. 문 목사도 그런 이상을 실험하기 위해 양주에서 농업공동체를 꾸렸다.

그러나 문목사는 함석헌 선생의 경우처럼 농사에서는 그다지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농사경험이 없어 생활이 어려워지자 나중에는 1인당 월8만원씩 정도를 추렴해서 공동체생활의 생활비로 쓸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농담삼아 "그게 합숙소지 공동체입니까"라고 놀렸던 기억이 난다. 문목사는 결국 1년남짓 노력하다 포기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갔지만 그의 농업문명론은 나에게 큰 힘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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