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시험을 주관하면서 시험을 불과 2개월여 앞둔 상태에서 관련 법령을 개정한 뒤 개정 당일부터 즉시 시행한다는 시행부칙까지 만들어 응시자 700여명을 탈락시킨 행정부의 편의주의적 법령 개정에 대해 법원이 "헌법의 신뢰보호의 원칙을 위반했다"며 무효 판결을 내렸다.서울고법 특별6부(이동흡 부장판사)는 8일 지난해 변리사 1차 시험에 지원했다가 불합격 처분을 받은 윤모(27)씨 등 3명이 특허청을 상대로 낸 불합격 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원심을 깨고 원고승소 판결했다. 윤씨 처럼 절대평가 합격선인 평균 60점 이상의 점수를 획득하고도 상대석차 1,000여명에 들지 않아 시험에서 탈락했던 응시자 689명은 이번 판결이 확정될 경우 모두 구제될 전망이다.
재판부는 "헌법에 비춰 법령의 제·개정으로 인한 신뢰의 파괴가 새 법령으로 인한 공익적 목적보다 클 때는 새 입법은 허용될 수 없다"며 "상대평가제로의 개정은 국가의 입법재량에 속하는 것이라 해도, 이 같은 변경을 즉각 시행하도록 한 부칙규정은 원고들의 신뢰를 과도하게 침해하는 등 헌법에 위반돼 무효"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원고들이 1차 시험에 탈락함으로써 1차 시험이 면제되는 특허청 공무원들(10년 이상 특허행정사무에 종사한 특허청 소속 7급 이상)은 2차 시험에서 경쟁이 줄어들어 상대적으로 합격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며 특허청의 갑작스런 법령 개정 배경에 대해 간접적으로 의혹을 제기했다.
특허청은 1999년 "변리사 공급을 확대, 국민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규제개혁위원회의 의결에 따라 2000년 6월 절대평가 방식으로 변리사를 선발하도록 개정안을 만들어 2002년 시험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지난해 3월25일 시험을 다시 상대평가로 되돌리는 것을 골자로 법령을 재개정한 뒤 '이 영은 공포한 날부터 시행한다'는 부칙까지 만들어 같은 해 5월26일 시행된 시험에 기습 적용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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