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부장판사가 민사재판 과정에서 거짓 증언을 한 증인을 위증 혐의로 검찰에 고발해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법관이 증인의 위증 행위를 문제삼아 검찰에 정식 수사를 의뢰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서울지검 조사부(소병철 부장검사)는 서울지법 민사합의42부 조수현 부장판사가 이달 초 "제대로 작성된 각서를 자신이 위조했다고 거짓증언했다"며 이모(53)씨를 위증 혐의로 고발해옴에 따라 8일 수사에 착수했다.
조 부장판사는 고발장에서 "박모(56)씨가 김모(48)씨를 상대로 제기한 약정금 청구소송 재판 과정에서 김씨측 증인으로 출석한 이씨가 '김씨 명의의 각서는 내가 위조한 것'이라고 거짓 증언했다"며 "이는 명백한 위증으로 이씨가 김씨로부터 돈을 받고 거짓 증언을 했을 가능성이 있는 만큼 조사를 해달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박씨는 자신의 부동산을 담보로 5억원을 빌려 김씨에게 대출해줬다가 김씨의 미변제로 부동산이 경매에 넘어갈 위기에 처하자 김씨로부터 "부동산이 경매되고 이를 되찾지 못할 경우 18억원을 변제하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받았다. 결국 김씨는 돈을 갚지 않았고 부동산이 경매에 넘겨지게 된 박씨는 이 각서를 근거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두 사람을 소개해 준 이씨는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 "각서는 내가 김씨의 필적을 위조해 작성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 부장판사는 이씨가 재판부의 거듭된 경고에도 증언을 번복하지 않자 박씨에게 승소 판결을 내린 뒤 이씨를 고발했다.
조 부장판사는 "여러 번의 필적 감정 결과 김씨의 필적으로 밝혀졌는데도 이씨가 계속 위조각서라고 주장했다"며 "공무원이 범죄혐의를 인지했을 경우 고발하도록 돼 있는 형사소송법 원칙에 따라 이씨를 고발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라며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서울지법의 한 판사는 "위증 혐의가 적발됐을 경우 형사재판은 공판부 검사들이, 민사재판은 소송당사자가 고소 고발의 주체가 되는 게 대부분"이라며 "민사사건 재판부가 증인을 위증 혐의로 고발한 것은 처음 보는 일"이라고 놀라워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검사가 참여하지 않는 민사재판은 말할 것도 없고 형사재판에서도 위증 혐의를 적발해내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며 "조 부장판사의 경우처럼 법원에서 위증사범에 대해 적극적인 대응을 한다면 검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진석기자 jseok@hk.co.kr
김지성기자 j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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