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하에서 유행한 트로트는 지나친 패배주의와 감상주의의 산물이며 친일적 측면도 있다." "당시의 비가(悲歌·트로트)는 민중의 분노와 울분을 표출한 것으로 반일 애국심을 고취하는 역할을 했다."속칭 '뽕짝'으로 통하는 '트로트'에 대해 남·북한 학자들이 내린 상반된 해석이다. '해방전 조선민족 대중가요 연구'를 주제로 6, 7일 중국 지린(吉林)성 옌지(延吉)에서 열린 국제학술세미나에서는 일제 때의 대중가요의 역할과 배경을 싸고 남·북한과 재중동포 학자들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한민족문화교류협회(회장 정덕준 한림대 교수)가 주관하고 학술진흥재단과 한국일보가 후원한 이번 세미나는 그 동안 남과 북이 서로 다른 관점에서 연구해온 대중가요에 대한 최근의 연구결과를 통해 우리 민족의 가요사를 정리하고 민족 음악유산 연구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세미나에서는 트로트를 둘러싼 남·북 학자들의 입장 차이가 단연 관심의 대상이었다. 북한 대중가요사 연구의 '대부' 격인 최창호 조선평양출판사 문예도서고문은 '류행가의 연원에 대하여'라는 발표문을 통해 1920∼40년대 유행했던 비가들이 항일의식을 담은 중요한 유산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특히 "이 시기의 비가들에 깔린 슬픔은 염세관이나 비관으로 좌절감을 안겨준 것이 아니라 그 밑바탕에 일본 침략자들에 대한 반항심과 불평, 불만 등이 들어 있으며 애국, 애족심으로 승화할 수 있는 바탕이 됐다"고 주장했다.
장영철 북한 윤이상음악연구소 실장도 비가들의 중요한 특성이 비극적인 이별과 타향살이가 강요되던 사회현실에 대한 설움과 울분 속에서 반일감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단정했다. 그는 '눈물 젖은 두만강'에서 '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나 오려나'라는 대목은 조국에 대한 그리움, 열렬한 사랑과 함께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을 날을 기다리는 광복의 염원을 나타낸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이어 "1930년대에 나온 밝은 행진곡 풍의 '감격시대'나 '바다의 교향시' 등도 광복의 앞날을 눈앞에 그려보며 '환희' '정열' '희망'으로 부풀어오른 인민들의 감정을 밝고 약동적인 정서로 노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남측 학자들은 이에 대해 다소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이영미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일제강점기 대중가요의 성격과 흐름'이라는 발표문에서 "트로트가 일본에서 유입된 양식의 대중가요로서 패배주의적일 정도로 극단적인 비애의 정조를 드러내보임으로써 식민통치에 도움을 주었다는 지적이 일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 '감격시대'가 적극적인 친일 내용은 없지만 행진곡은 주민 동원체제나 전쟁에 어울리는 음악"이라며 친일적인 요소가 있음을 시사했다. 하지만 그는 "북측이 일부 트로트의 친일적 성격을 외면한다든가, 무조건 정치적인 의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안된다"면서 "당시의 노래들은 시대상황과 개인의 경험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만큼 하나하나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탐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토론에 참여한 남측 한 연구자는 "북측은 몇몇 친일성이 있는 노래까지도 민족음악유산에 포함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지만 우리 민족예술 자산의 좋은 측면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려는 노력으로 볼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남측에서 김춘섭(전남대) 고순희(부경대) 교수와 김정희 서울대 강사가 각각 창가, 항일의병가요, 가곡 연구결과를 발표했고 북측에서는 박형섭 조선중앙민족음악무용연구소장, 김동수 2·16예술교육출판사 부사장이 계몽기 가요에 대한 입장을 정리했다. 또한 옌볜대학의 김성준, 최옥화, 남희철 교수가 중국 내에서의 우리 가곡과 민요의 특징 등에 대한 연구 내용을 소개했다.
/옌지= 글·사진 최진환기자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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