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말 우리 차(茶) 문화의 중흥조(中興祖)인 초의선사(艸衣禪士) 장의순(張意恂·1786∼1866)의 유묵과 새로 발굴된 초상이 일반에 공개됐다. 8일 백상기념관에서 개막한 '다인(茶人) 초의선사 유묵전'을 통해서다.이 전시에는 초의선사의 유묵 '춘설전차(春雪煎茶)' '다선(茶禪)' 등 예서와 해서, 행서 대필 14점 등 20여 점이 최초 공개됐다. 이 유묵은 문화재 연구·수집가인 이원기(72) 백선문화사 대표가 소장해오던 것이다. 이씨가 공개한 소장품 중에는 또 초의선사의 호 그대로 '초의(풀옷)'를 입고 삿갓을 쓴 채 오른손에는 긴 지팡이를, 왼손에는 염주를 들고 걸어가는 모습의 '초의선사지상'도 포함돼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초의선사의 초상은 소치(小癡) 허유(許維)가 1889년 초의선사가 사망한 뒤 그를 기려 그린 '초의선사 초상'이 유일했다.
이씨는 "1983년 천안의 한 골동품상에게서 옛 대흥사 주지 스님을 통해 입수했다는 이 유묵들을 구해 소장해왔다"고 밝혔다. 이씨는 "1997년 5월의 문화인물로 초의선사가 지정돼 소개되기도 했지만 막상 그의 서작은 알려지지 않아 안타까웠다"며 "지난해 유묵의 영인 작업을 마쳤다"고 말했다.
초의선사의 글씨는 그와 1786년생 동갑으로 생전에 깊은 교분을 나눴던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영향이 두드러져 보인다. 서예평론가 정충락씨는 "초의는 완당에게서 서사(書寫)에 대한 형상적인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추사의 호방한 필체처럼 초의선사의 필체도 독특한 조형성과 호쾌한 기운이 느껴진다는 설명이다. '춘명(春茗)'에서는 '맑은 날 밝은 창에서 한가하게 묵으로 글씨를 쓰고, 차가운 샘물 옛 차솥으로 스스로 차를 다린다'는 대구가 붙어있어 차에 대한 그의 애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초의선사는 전남 무안군 출생으로 16세에 출가, 40여년간 해남 대흥사 일지암에서 참선했다.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있던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에게서 유학, 시학을 배웠으며 추사, 소치 등과 시, 서, 화로 두터운 교분을 쌓았다. 특히 '한 잔의 차를 통하여 법희선열(法喜禪悅)을 맛본다' '불심이 곧 선이요, 차와 선이 둘이 아니다'라며 다선일미(茶禪一味) 사상을 제창하며 우리 전통 차문화를 집성, '동다송(東茶頌)' '다신전(茶神傳)' 등의 저서를 남겼다. 이번 전시에는 초의선사의 유묵과 함께 추사, 다산의 글씨와 초상도 함께 나온다. 14일까지. 문의 (02)742―9971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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