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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길위의 이야기/작은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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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길위의 이야기/작은 소망

입력
2003.10.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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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 30분 '조남철의 바둑교실'로 시작한다. 8시엔 뉴스, 8시 20분엔 '노래의 날개 위에'가 나온다. 가수들이 을숙도를 거닐며 립싱크로 가곡을 불러야 한다. 40분엔 '장학퀴즈'의 똑똑한 고교생들의 모습을 보고 9시 40분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나오시는 '장수만세'를 본다. 11시 10분엔 '준비하시고 쏘세요!' 주택복권 추첨이 있다. 12시 10분 '쇼쇼쇼' 재방송도 놓칠 수 없다. 오후 2시엔 '두 얼굴의 사나이', 결코 팬티는 찢어지지 않는 헐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게 끝날 쯤엔 '마징가제트'가 방송되는데 같은 시간대의 '미녀 삼총사'도 좋다. 4시엔 '배달의 기수'의 어설픈 인민군 엑스트라들을 놀려먹을 수 있다. 5시가 되면 '그레이트 마징가'를 본다. 역시 그레이트하다. 그러나 서둘러 저녁을 먹어야 한다. 6시 25분이면 '웃으면 복이 와요'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구봉서, 배삼룡의 슬랩스틱을 보다가 드디어 8시가 된다. '수사반장―울릉도 갈매기' 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명화극장' 서부 영화 한 편 보면 하루가 간다.믿기 어렵겠지만 이 모든 프로들은 단 하루 동안 방송됐던 것이다. 1979년 6월 30일 일요일의 텔레비전 편성표이다. 딱 하루만 이 모든 프로그램을, 순서대로 보면서 뒹굴고 싶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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