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직원들은 8일 흐뭇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전날 일본 소니의 이데이 노부유키 회장이 "위기를 극복하고 세계적 기업으로 우뚝 선 삼성전자를 배우자"고 역설했기 때문이다.삼성전자가 시가총액에서 처음으로 소니를 추월한 것은 지난해 4월. 이후 세계 언론에서 삼성전자와 소니를 비교하는 기사가 쏟아졌지만, 이데이 회장은 "삼성은 아직도 우리를 배우고 있는 중"이라며 애써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때문에 공개석상에서 삼성전자를 추켜세운 이데이 회장의 발언은 양 사의 위상 변화와 더불어 새로운 변화에 놓여있는 삼성전자와 소니의 관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는 것이 업계의 반응이다.
긴장한 소니, 긴장 놓지 않는 삼성전자
지난해 10월부터 쭉 시가총액에서 앞섰던 삼성전자는 7일 집계에서 69조1,212억원으로 38조5,560억원에 그친 소니와의 격차를 벌렸다. 1996년 11분의1 수준에 불과했던 것을 감안하면 격세지감이다.
한때 소니를 교과서처럼 여겼던 후발주자 삼성전자가 소니를 넘어설 수 있었던 것은 외환위기 이후 과감한 구조조정과 지속적인 연구개발(R& D) 투자로 반도체, 디스플레이, 휴대폰 등 차세대 핵심분야에서 주도권을 확보했기 때문이라는 분석.
하지만 삼성전자는 연간 거래규모가 10조원에 이르는 주요 거래처 소니를 자극해서 좋을 것이 없다는 판단 때문에 조심스러운 자세다. 윤종용 부회장은 지난달 월례사에서 "소니의 독창성을 배워야 한다"고 긴장감을 늦추지 말 것을 당부했다.
반면 소니는 잔뜩 신경을 곤두세운 모습이다. 이데이 회장은 경영진회의에서 수시로 삼성전자의 수익구조를 놓고 사업전략을 논의하는가 하면, 최근에는 삼성전자의 동향을 취합한 보고서를 매달 챙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협력과 경쟁의 관계
삼성전자의 부상에 따라 양 사의 관계는 전략적 제휴를 맺는 동시에 물밑으로는 치열한 경쟁을 하는 독특한 관계로 변화하고 있다. 한마디로 협력과 경쟁이 공존하는 관계다.
양 사는 8월 차세대 저장매체로 떠오른 '메모리 스틱(Memory Stick)'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한데 이어 액정표시장치(LCD) 부문에서는 아예 합작회사를 설립하는 협상을 진행하는 등 어느 때보다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가전업계의 화두로 떠오른 홈 네트워크 시장에서 조만간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업계의 대체적인 전망. 이미 삼성전자는 홈 네트워크 콘텐츠 확보를 위해 소니가 주도해온 엔터테인먼트 시장과의 접목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 음악파일 제공업체 냅스터와 전략적 제휴를 맺은 데 이어 월트 디즈니사에 주문형비디오(VOD) 서비스로 영화를 볼 수 있는 셋톱박스 '무비 빔(Movie Beam)'을 독점공급하기로 한 것도 이 같은 포석의 일환.
가전업계 관계자는 "디지털(장비)과 엔터테인먼트(콘텐츠)의 융합으로 이뤄지는 홈 네트워크가 미래 전자업계의 '꽃'으로 전망되는 만큼 충돌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당분간 협력과 경쟁을 거듭하는 독특한 관계를 유지해 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천호기자 tot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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