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사극 '다모'(MBC)에서 탤런트 김민준이 사랑하는 여인에게 던지는 따뜻한 말이라고는 '산채에서 오래오래 정을 나누며 살았으면 좋겠어'라는 '썰렁한' 말이 고작이다.부드럽고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닭살 돋는 밀어를 끊임 없이 쏟아 놓는 꽃미남 주인공과는 다른 모습이다. 아기처럼 보송보송한 피부나 찰랑거리는 머리카락도 먼 얘기다. 마구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뙤약볕 아래 새까맣게 탄 피부를 자랑스럽게 드러낸다.
무뚝뚝하고 차가운 인상의 대명사 김남진은 요즘 출연하고 있는 주말 드라마 '회전목마'(MBC)에서 소위 '싸가지 없는 신세대' 이미지를 벗었다. 대신 그는 사랑하는 여자를 책임지는 남자로 변신한다. 사업 실패 끝에 아버지가 죽고 엄마는 자살하고 새 엄마는 도망가고 동생과도 생이별한 고아 장서희를 수렁에서 건져 내려 한다. 부자임을 숨겼다고 바락바락 화내는 여자친구를 달래고 자기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또 유학까지 떠나자고 한다.
당대의 미남, 미녀에 대한 기준은 늘 변하지만, 최근 뜨고 있는 미남은 '경기 불황'에 따른 불안 심리를 반영한 미남형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만하다.
각진 턱은 신뢰감의 비밀
김민준과 김남진은 둘 다 모델 출신이지만 '꽃미남과'로 분류하기는 힘들다. 쉽게 친근해질 수 없는 낯설고 무뚝뚝해 보이는 인상이다. 하지만 그 덕에 "진중해 보이고 신뢰가 가는 것이 매력"이라고 여성들은 말한다.
안면 전문가들은 김남진과 김민준이 여성들에게 신뢰를 주는 가장 큰 요인이 '각진 턱'이라고 분석한다. 김남진과 김민준은 특히 턱 부분, 즉 하관이 발달한 형이다. 비정상적일 정도로 깎아 내려진 턱선의 원빈, 정우성, 안정환 등 전형적 꽃미남과 달리 사각턱에 가까울 정도다.
각진 턱은 오랫동안 환영 받지 못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남성의 인상에서 턱은 가장 중요한 부분. 우리나라에서는 극히 드물지만 미국의 증권가에서는 상관이나 고객에게 신뢰감을 주기 위해 인조뼈를 넣어 일부러 턱을 각지게 하는 수술이 흔히 이루어진다고 한다. 드림성형외과 드림미의학연구소 김영준 원장은 "턱 부분이 발달한 남성은 강인하고 정직하고 배신하지 않을 것 같은 이미지를 준다. 김민준과 김남진 역시 하관이 발달한 데다 유약한 느낌을 주는 커다란 눈 대신 쌍꺼풀 없는 가는 눈이 조화돼 여성들에게 믿음을 주는 인상"이라고 평했다. 그는 "서양에서도 말론 브란도, 커크 더글라스, 찰슨 브론슨 같은 하관발달형 배우와 알랭 들롱 같은 부드러운 턱선의 배우가 번갈아 인기를 끌었다"며 "우리나라에서도 부드러운 인상의 배우가 지고 강인한 남성상이 뜨는 신호탄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꽃미남에게 '취집' 하긴 불안해
인상 전문가인 조용진 한서대 얼굴연구소 소장는 "두 배우의 특징이라면 눈썹이 진하고 눈두덩이가 두텁고 눈시울이 좁은 데다 골격이 약간 나와 보이고 입이 커 보이는 인상으로, 일본 만화 속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무사형 캐릭터"라고 평했다. 그는 이들이 요즘 인기를 끄는 요인으로 "예쁘고 연약한 꽃미남에 대한 식상함"을 들었다. "꽃미남이 지겨워진 와중에 일본 만화를 통해 익숙한 강한 외모의 탤런트가 등장해 인기를 끄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홍보대행사 (주)커뮤니크 사원인 이미나(30)씨는 남성에 대한 취향도 시대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한다. "꽃미남이야 손위에 올려 놓고 인형처럼 예뻐하고 귀여워 해 주기 좋지만 그것은 여성들이 강하고 능력 있을 때의 얘기다. 요즘처럼 살기 힘들때는 뭐랄까, 예쁘거나 귀엽지는 않지만 묵묵히 나를 책임져 줄 것 같은 남자를 만나서 기대고 싶은 심리가 발동하는 것이다."
실제로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 취직 대신 시집을 간다는 '취집'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난 만큼 미혼 여성 사이에서 능력 있고 믿음직한 남성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결혼정보회사 선우의 커플 매니저 설희진씨는 "자신을 책임질 수 있는 남성인지 여부를 재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말한다. 경제력은 최고의 조건으로 떠올랐다. 명문대를 졸업한 평범한 직장인보다는 평범한 대학을 나오더라도 재력이 있는 남자를 택하겠다는 여성이 늘어났다. 외모에 대한 취향도 '귀여운 꽃미남'을 꼽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한다. 설씨는 "쌍꺼풀 없는 눈에 남자답고 체격이 적당히 듬직한, 둥근 얼굴형의 너무 잘생기지 않은 이가 요즘 여성들이 가장 선호하는 배우자감"이라며 "김민준이나 김남진의 인기에도 이 같은 여성들의 취향 변화가 반영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최지향기자 mis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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