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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개혁의 기회 놓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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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개혁의 기회 놓칠라

입력
2003.10.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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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의 분열에 따른 소위 '신 4당 체제'와 무당적 대통령이라는 사상 초유의 정치실험이 목하 전개되고 있다. 이 실험을 지켜보고 있는 국민들은 답답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여소야대 구조에서 민주, 개혁, 통일세력이 힘을 합쳐도 부족할 판에 이렇게 분열되고 헐뜯다가는 반개혁 세력들이 어부지리를 차지할 게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그동안 지도층의 분열 때문에 민주화 기회를 놓쳐버리고 국민을 허탈하게 만든 것이 몇 번이었던가. 그리고 그런 일이 있은 게 얼마나 오래되었다고 아직도 정치인들은 소아병적 건망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인가. 명분 때문에 갈라선 민주당과 통합신당 정치인들이여, 명분 싸움은 당내에서 하시라. 아무리 훌륭한 명분이라도 깨진 쪽박으로는 퍼 담을 수 없지 않은가.

우선 신당창당은 창당이 아니라 분당이라는 멍에를 벗을 길이 없다. 물론 저간의 사정을 이해 못하는 바 아니다. 그러나 무릇 정치란 최선을 추구하되 안되면 차선을 취하고, 차선도 취하기 어려우면 최악을 피하는 것이어야 하는데 이번 분당과 신당창당은 최악의 선택이었다. 생물학적 분열은 성장을 의미하지만 정치적 분열은 자멸 내지 공멸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대야당을 상대로 개혁을 추진하기도 버거운데 여당 내에서 성골과 진골을 꼭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

신당창당의 명분으로 내건 정치개혁은 집권 초기에 국민적 지지와 기대가 높을 때 가능하다. 그래서 민주당이 가장 먼저 했어야 할 일은 창당논의가 아니라 노 대통령의 선거공약에 따른 정치개혁이었다. 그런데 정치개혁 논의는 뒤로 미룬 채 인적 청산이니, 신당창당이니 하면서 아까운 시간을 다 허비해버렸다. 창당 논의가 한창일 때 신당창당 논의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정치개혁 논의가 급선무라고 주장한 '당찬 여자' 추미애 의원의 말에 노 대통령은 귀 기울여주지 않았다.

창당 목표로 내세운 지역주의 극복도 명분으로서는 다소 구차하다. 진정으로 노 대통령이 극복해야 할 지역주의는 호남의 저항적 지역주의가 아니라 영남의 패권적 지역주의이다. 호남 유권자들의 노무현 지지는 전략적 선택이라기 보다는 지역주의 피해자가 지역주의를 극복하겠다는 정치적 의지의 표현이었다. 호남에서는 지난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과거 지역주의 성향의 투표에 대한 반성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었는데, 이번 민주당 분당과 신당 창당은 엷어져 가던 지역주의를 영·호남에서 공히 확대재생산하는, 우(愚)를 넘어서 죄(罪)를 범할 가능성마저 농후하다.

광복 이후 한국정치사의 특징 중 하나는 우리 국민들이 정치적 명분을 잃지 않는 정치인이나 정당을 결코 저버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늘날 노 대통령이 있게 된 계기도 바로 그가 정치적 선택의 기로에서 정치적 실리보다는 명분을 택했기 때문이 아닌가. 통합신당 창당의 정치적 명분이 미약하다는 것은 노 대통령 자신이 더 잘 알 것이다. 최악의 선택으로 최선의 결과를 바라는 것은 연목구어나 다름없다.

그나마 통합신당이 다른 3당과 차별성을 갖고 진실로 정치개혁과 지역주의 극복을 통한 새로운 정치를 추구한다면 꼭 실천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투명한 정치, 투명한 선거'를 위해, 그 동안 학계와 시민단체가 주장하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수용하여 제출한 정치개혁 관련 법안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되도록 모든 역량과 노력을 다하는 것이다. 이 법안에 대해서는 이미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이제 대통령과 여야를 초월한 정치인들의 의지와 결단만 남아있다.

평범과 비범의 차이는 생각이나 말에 있지 않고 행동에 있다. 오늘은 한글날. 백성을 '어엿비' 여겨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의 깊은 뜻을 대통령과 정치인들은 되새겨 보기 바란다. 개혁의 기회를 실종시킨 역사의 죄인이라는 낙인을 찍히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송 병 록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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