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개포동 한 아파트단지 관리사무소 앞. 좁지 않은 공터엔 서로 다른 모양과 색깔의 자전거 수 십대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 하지만 하나같이 성한 것이 없다. 바퀴 하나가 도망간 것, 브레이크가 망가진 것, 핸들을 돌리면 '뻑뻑' 소리가 나는 것…. 긴 '자전거 환자'의 행렬 끝에는 환부를 어루만지느라 비지땀을 흘리는 손들이 있다. '자전거 마술사'로 불리는 강남자활후견기관 소속의 자전거 이동수리 사업단원들이다.인기짱 '자전거 마술사'들
강남구 내 기초생활보호대상자 6명으로 구성된 이동수리단은 지난해 2월 선발된 후 3개월 동안 자전거 수리 교육을 받고 5월부터 현장에 나섰다.
강남구와 송파구의 아파트 단지와 한강 둔치를 다니며 고장 난 자전거들을 부품 값만 받고 고쳐주거나 버려진 자전거들을 수거해 수리한 후 저소득층 청소년들이나 사회복지기관에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자전거 구입을 원하는 일반인들에게 시가보다 40%이상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기도 한다.
이동수리단은 가는 곳 마다 주부들과 아이들에게 인기 폭발이다. '설마, 이걸 고칠 수 있을까'하며 몇 년씩 방치된 자전거를 끌고 나온 주부들은 말끔해진 자전거를 보면서도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들.
2년 전 고장나서 타지 않던 두 아들의 자전거를 고쳤다는 이경옥(38·여)씨는 "자전거 수리점을 찾기도 힘들고 비용도 만만치 않아 그냥 내버려 두다 혹시나 하고 왔는데 이렇게 고쳐질 줄 몰랐다"며 "아들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 같다"며 기뻐했다.
이동희(50·여)씨는 "장보러 다닐 때 자가용을 이용하면 길이 막혀 답답했는데 자전거를 이용하면 훨씬 편리할 것 같다"며 단원들에게 감사의 음료수를 건넸다.
자리잡기까지 순탄치 만은 않아
하지만 이동수리단이 지금처럼 자리를 잡아가기까지의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자활후견기관 남종현 팀장은 "겉모습이 초라한 이들을 믿을 수 없다며 관리사무소와 부녀회가 내쳐 애를 먹기도 했다"면서 "수리할 자전거를 받아보기는커녕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쫓겨나기 일쑤였다"고 고충을 털어 놓았다.
단원 최동명(57)씨는 "처음 몇 달은 못 고치고 그냥 돌려 보내는 자전거도 종종 있었다"며 "그럴 때마다 동료들과 궁리하면서 답을 찾아내느라 고생 좀 했다"고 말했다.
김관식(56)씨는 "몇 시간씩 쭈그리고 앉아 수리하다 퇴근 할 때쯤이면 허리가 끊어질 것 같다"며 "그렇지만 저렇게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면 힘든 건 싹 가신다"고 말했다.
오후가 되면서 수업을 마친 초등 학생들이 끌고 온 자전거들로 자전거 행렬은 늘어만 간다. 자전거가 예상보다 많아지자 이동수리단을 이끌고 있는 팀장과 실장까지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다. 김종학 실장은 "대기자가 많을 때는 바퀴에 바람 넘는 일은 대신하기도 한다"며 "매일 스케줄이 빡빡해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라고 말했다.
실제 남 팀장이 펴보인 일정표에는 휴일을 빼고는 빈 칸을 찾을 수가 없다.
이동수리단의 성공 사례를 접한 후 부천 원미구와 강원 춘천시 등 다른 지자체 자활기관에서도 자전거이동수리사업단을 운영하고 있다. 자전거 이용 활성화라는 측면에서 볼 때 환경 친화적인 교통 대책이면서도 일할 능력이 있는 기초생활보호대상자 들에게 재정적인 지원을 하는 이중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 그 이유.
"더 큰 희망을 키우고 있죠"
이동수리단은 강남구가 생활이 어려운 주민의 자활을 돕기 위해 전국에서 처음으로 운영을 시작했다. 단원들은 일당 2만7,000원을 받아 생계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 마음속엔 하루하루 '더 큰 희망'을 키워가고 있다.
14년 전 사업을 하다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수리단원 김성호(53)씨는 "내 손으로 고친 자전거를 사회복지시설이나 저소득층 청소년들에게 되돌려 줄 수 있어 뿌듯하다"며 "노하우가 쌓이면 작은 점포를 운영해 볼 생각"이라고 소망을 밝혔다.
몇 년 동안 공공근로 현장에서 일했다는 최동명씨는 "나이가 들수록 힘이 부쳐 공공근로 현장에도 나갈 수 없어 어떻게 해야 할 지 막막했다"며 "아직까지 작지만 내 힘으로 직접 수입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고 말했다. 최씨 역시 기회가 된다면 자전거 수리 사업을 해 볼 생각이다.
김종학 실장은 "크지 않은 액수지만 이동수리단이 올리는 수입을 매일매일 적립하고 있다"며 "이 수익금을 포함해 최고 7,000만원까지 창업을 희망하는 단원들에게 창업자금으로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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