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중이던 1951년 10월8일, 역사학자 김성칠이 고향 영천에 들러 하룻밤 머물다가 괴한의 저격으로 작고했다. 38세였다. 김성칠의 작고 당시 직책은 서울대 사학과 조교수였다. 김성칠은 해방 직후 '조선역사'(1946)라는 책을 냈고 펄 벅의 '대지'나 강용흘의 '초당' 같은 소설을 우리말로 옮기기도 했지만, 그의 이름이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만년의 일기가 '역사 앞에서'(창작과비평사)라는 표제로 출간된 1993년 이후다.이 일기는 1945년 12월1일에 시작해 1951년 4월8일에 끝난다. 인공 치하의 서울 생활을 기록한 부분이 특히 자세하다. 책의 형태로 나온 텍스트와 원래의 일기 원고 사이에 혹시 있을 수도 있는 거리는 원고를 간직하고 있던 유족들만 알겠지만, 설령 출간 과정에서 다소의 윤문이 가해졌다고 해도 이 일기의 가치는 엄연하다. 지식인의 균형 감각 위에 얹힌 객관성과 공정함에서, 당대의 혼탁한 국어 현실을 훌쩍 뛰어넘은 문체의 단정함에서, 약소 민족 구성원의 근원적 비애감을 바탕으로 필자가 전달하는 전쟁기 일상 생활의 생생한 실감에서, '역사 앞에서'는 단순한 사료를 넘어 일기 문학의 고전으로 꼽을 만하다.
1950년 12월 28일자 일기 한 대목. "마을에는 흥남서 철수해온 미병(美兵)들이 들어서 여러 가지 불안한 공기를 자아내고 있다. 부흥동과 치일동에서 부녀를 강간한 사건이 생겼고, 아랫마을에는 여자를 내어주지 않는다 해서 무고한 백성을 쏘아 죽인 사건이 생겼다. 젊은 여자들은 모두 산중으로 피란 가고 있다. 이런 외군이라도 제발 오래오래 계셔 주시옵소서 하고 비두발괄해야만 할 대한민국의 처지다.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도록 인민공화국이 만들어버린 것이다. 아아, 어디에 가면 진정한 우리의 조국이 있을 것인가."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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