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정상이 7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최초로 공동선언문을 채택한 것은 3국간 협력 분야를 총망라해 공식화하고 '3자 위원회'라는 협력강화를 위한 제도적 틀까지 만들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무역 및 투자, 정보·통신사업, 환경보호 등 14개의 협력 분야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북한 핵 문제 등 민감한 사안을 다룬 안보분야 협력에 대한 합의다.
3국 정상은 우선 북한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비핵화 원칙을 재확인한 뒤 제2차 6자 회담의 조속한 실현에 대한 기대를 담았다. 특히 공동선언문이 군축과 관련한 협의 및 협력을 강화키로 명시한 것은 군축이라는 예민한 문제를 협상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았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평가를 받고 있다. 반기문(潘基文) 외교보좌관은 "동북아시아 지역의 군축은 민감한 부분이 많아 이제까지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면서 "아직 구체적 프로젝트는 없으나 앞으로 협의를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첫 걸음을 떼는 단계이기는 하지만 군축 논의가 시작됐다는 뜻이다.
3국은 이와 함께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를 위해 수출통제를 포함한 정치,외교,행정적 조치를 취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이는 국제적 규범을 따른 다는 측면도 있으나 북한에 대한 압박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경제 분야에서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의 남용과 자의적 적용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키로 한 것은 세계적 교섭과정에서의 동아시아가 집단 대응을 해나가겠다는 뜻이어서 주목된다. 그러나 3국의 경제발전 정도가 서로 다르고 경제적 이해관계가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 아니어서 앞으로 공동 관심사에 대한 협력 토대를 어떻게 구축해 나갈 지가 관심사다. 공동선언문이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여부와 관련, "3국 공동연구의 진전을 평가한다"고 언급한 데 그친 것도 3국의 엇갈린 경제적 이해관계를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날 회의에서 중국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예정된 의제가 아님에도 불구, 위안화 문제를 꺼낸 데서도 3국의 미묘한 시각차가 드러났다. 반 보좌관에 따르면 溫 총리는 미국의 위안화 절상 압력을 거부할 뜻을 밝혔고, 일본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중국이 여러 국제 정세를 감안해 위안화 문제를 검토하는 것을 환영한다"며 은근히 미국쪽 요구에 무게를 실었다. 순번에 따라 회의를 주재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회의 의제가 아니므로 溫 총리의 언급은 참고로 하고 각자의 입장표명은 하지 않도록 하자"며 운영의 묘를 살리기도 했다.
/발리=고태성기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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