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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생명 풀무꾼 원경선 <18> 유기농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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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생명 풀무꾼 원경선 <18> 유기농과의 만남

입력
2003.10.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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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해 짓는 농사는 사람과 환경을 죽이는 죽음의 농사다. 내가 먹는 농작물은 텃밭에서 농약도 안치고 길러내면서 남에게 파는 농작물에는 농약을 치고 화학비료를 뿌린다면 이는 간접살인이나 마찬가지다. 화학비료나 농약 없이도 충분히 농사를 지을 수 있고 더 건강한 농작물을 생산할 수 있다.1974년쯤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일본의 애농회(愛農會)라는 단체에서 발행하는 '애농'과 '사랑의 집'이라는 두권의 잡지에서 이런 문구들을 만났다. 그때까지 농사짓는 데 큰 고민과 문제의식이 없던 내게 우연하게 접한 이런 문구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농약과 화학비료 없이도 농사를 짓는 다는 게 사실 믿기지 않았다. 일단은 기회가 된다면 유기농법을 자세히 알아보기나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유기농을 접할 기회는 금세 찾아왔다. 미국에 출장갔다 오는 길에 애농회 생각이 나서 도쿄에 무작정 내렸다. 애농회를 이끌던 고다니 준이치(小谷純一)선생에게 전화를 걸어 '만나뵙고 싶다'는 의사를 전하고는 또다시 무작정 관서지역 미에(三重)현 아오야마(靑山)에 있는 애농학교로 그를 만나러 갔다.

고다니 선생은 교토(京都)대학 농학부를 졸업한 뒤 직접 농사를 지으며 애농회를 조직해 처음에는 농촌살리기 운동을 벌였다. 전후 피폐해진 일본 경제를 살리자면 농업이 건실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다 나중에 유기농을 접하고 유기농운동을 적극적으로 벌였다. 그는 나를 반갑게 맞아줬다.

"한국에서도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 한국사정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습니다"고 운을 뗀 고다니 선생은 "한국의 농사나 농업기술은 일본에 비해 약 10년 정도 뒤떨어져 있습니다. 그렇지만 일본은 생산증대를 위해 무분별하게 농약을 치고 화학비료를 사용해 농업이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한국은 제발 이 같은 전철은 따라가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일본은 과거 한국에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속죄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부탁입니다"며 정중하고 간곡한 부탁을 덧붙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그렇다면 과연 대안이 있는가'고 물었고 고다니 선생은 유기농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고다니 선생은 유기농에 대한 효능을 자신의 경험으로 알려주었다. 전쟁통에 부인과 함께 결핵을 앓아 76㎏ 나가던 몸무게가 36㎏까지 떨어졌는데 유기농과 현미식을 하고부터 결핵도 낫고 몸무게도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그는 전했다. 그 말을 듣고 현미식을 결심한 나도 귀국한 뒤로 바로 실천에 들어갔다.

나는 고다니 선생과 많은 이야기를 나눈 끝에 농업을 살려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하게 됐다. 수입에 의존하는 농정정책을 펴다가는 종래에 나라를 빼앗길 수도 있고 편리한 공업문화를 추구하는 농업을 하다 보면 환경을 망칠 수 있다는 데 공감하게 된 것이다. 미처 유기농까지는 생각을 못했지만 밀이나 콩 등의 농작물을 수입가공해 판매하는 정책을 고집한다면 농업은 파탄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던 나에게 고다니 선생은 천군만마나 다름없었다.

나는 고다니 선생에게 한국에서 유기농법에 대한 강연을 부탁한다고 청을 넣었다. 고다니 선생은 그 자리에서 흔쾌히 승락했고 이듬해인 1975년 고다니 선생의 첫 강연회가 부천 풀무원농장에서 성사됐다. 풀무원 농장 강연 뒤 고다니 선생은 전국을 돌며 유기농법을 설파했고 그 뒤에도 수시로 한국을 방문해 나를 격려하고 유기농에 대한 새로운 기법도 전수해 줬다. 나보다 두살 위인 고다니 선생이 갑자기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병문안 겸해서 최근 일본을 다녀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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