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의 날 치사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대한 낙관적 전망과 확신이 설 때 이라크 추가파병에 대한 결정을 내리겠다고 시사했다. 북핵 위기와 미 2사단 재배치 문제로 안보 우려가 불거져 나오는 시점에서 파병과 안보를 연계 시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발상이다.그러나 미국 내 시각은 이러한 구상에 다분히 회의적이다. 우선 파병을 빌미로 미국에 보다 신축적인 대북 협상자세를 요구할 경우, 이는 현 경색 국면의 책임을 미국에 전가 시키는 격이 될 뿐 아니라 6자 회담 등에서 북한에 유리한 협상의 지렛대를 제공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일부 공화계 인사들은 이러한 북핵 연계를 하나의 협박(블랙 메일)으로까지 간주한다.
2사단 재배치 문제와의 연계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주한 미군 재배치는 군사전략 전환이라는 미국의 세계전략의 일환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이미 한미간에 합의를 본 사항인데, 이를 추가 파병과 연계 시켜 흥정한다면 미국 내 반한 여론을 촉발, 사태를 악화 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조건 없이 파병을 결정할 경우, 미국이 자발적으로 재배치의 지연이나 조정을 고려 할 수 있지만 흥정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심지어 한국 기업의 이라크 재건 참여 문제도 파병의 전제조건이 되어선 안 된다는 시각이다. 파병을 전제로 한 경제적 국익의 극대화는 한국을 용병국가로 각인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파병과 전후 복구사업 참여는 구분 되어야 하며, 한국도 참여 예정으로 있는 이라크 전후 복구 지원 공여국 회의를 통해 이 문제를 부각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라크 추가 파병 문제를 우리의 사활적 국익과 연계 시킬 수 없다면 미국은 도대체 어떤 명분으로 우리의 파병을 바라는가. 미국이 내거는 명분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동맹으로서의 의리와 책무이다. 설령 이라크 전쟁이 잘못된 전쟁이라 하더라도 피로 맺어진 50년 동맹의 당사자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이를 도와주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미국의 파병 요청이 전쟁이 아니라, 전후 치안 유지와 재건을 위한 것인데 이를 흥정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역지사지로 만일 한반도에 예상치 않은 위기 사태가 발생할 경우, 미국 역시 동일한 태도를 취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
둘째, 국제 사회의 선도국가로서의 의무를 들고 있다. 이라크 문제는 더 이상 미국 또는 이라크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 문제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라크 사태가 평정되지 못한다면 종족, 종파간의 갈등에 따른 대량 살육, 걸프 지역의 전략적 불안정, 그리고 그에 따른 원유 공급 차질 등 국제 문제를 수반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제 규모 세계 12위 국가이자 보편외교의 전개를 통해 국제사회에서 선도적 역할을 모색하는 한국이 이라크 사태를 도외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신뢰의 문제이다. 어려운 국내정치 여건 하에서 참여정부가 조건 없는 파병을 신속히 결정하면 미국 내 반한 세력에 쐐기를 박고, 한미간의 신뢰를 강화하여 북핵, 주한 미군 재배치, 그리고 기타 경제적인 면에서 더 큰 이득을 가져 올 수 있다는 것이다.
파병 결정을 함에 있어 안보 연계론 못지않게 미국 측의 명분론도 다분히 일리가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참여정부의 현명한 결단 뿐이다.
/연세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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