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탈락시 용퇴하던 관행을 없애겠다고 밝힌 가운데 1999년 고법 부장 승진에서 누락됐으나 변호사로 개업하지 않고 끝까지 법원을 지켜온 김기수(63·사진) 서울지법 북부지원 수석부장판사가 7일 정년 퇴임했다. 김 부장은 노무현 대통령과 사법시험(17회) 동기다.김 부장은 그러나 이날 열린 퇴임식에서 최근 진행된 서열 파괴식 사법개혁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쓴소리를 했다. 김 부장은 "법관은 자존심과 긍지로 사는데 서열파괴나 인적청산은 이를 갉아먹는 행위"라고 말했다. 그는 "나도 돈을 벌거나 혹은 승진이 안돼 판사직을 그만두고 개업하려했던 적이 네 차례나 있었지만 판사로서의 자긍심이 무엇보다 중요했다"며 "법관은 승진이 아니라 판결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승진에 연연하는 후배들을 질타했다.
법관이 너무 보수적이라는 지적에 대해 그는 "법관은 너무 진취적인 것이 오히려 문제"라며 꼼꼼히 기록을 검토하고 신중히 판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부장은 "26년간 인간이 저질렀다고 보기에는 천인공노할 사건을 너무 많이 봤다"며 "인간의 존엄성이 아무리 중요하다지만 이들을 그냥 놔둘 수는 없지 않느냐"며 '사형제도 찬성론자'로서의 시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1985년 서울형사지법 판사 시절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돼 법정에 섰던 대학생들의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그는 "당시 법정에서 보던 젊은이들이 지금은 386세대의 주역으로서 대통령을 보좌하는 일을 맡고 있는 것을 보면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36살의 늦은 나이에 사시에 합격한 김 부장은 1977년 9월 전주지법 판사로 임용된 뒤 1989년 청주지법 제천지원장으로 승진한 이후 14년간 부장판사직을 유지했다. 김 부장은 1999년 10월 고법 부장 승진 대상에서 제외된 뒤에도 법원에 남아 2000년 2월부터 북부지원 수석부장판사로 일해왔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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