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6대 재벌에 대한 부당내부거래 조사결과를 6일 발표했지만 계열사간 부당지원 적발규모가 이전보다 휠씬 줄어 공정위가 어려운 경제여건을 감안, 봐주기식 부실 조사를 한 것인지, 아니면 재벌의 부당내부거래 관행이 실제 개선된 결과인지를 놓고 논란이 분분하다. 그러나 봐주기식 부실조사이든, 재벌관행의 개선이든 어느 쪽이든 간에 공정위는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 부실조사라면 공정위 스스로 경기논리에 밀려 개혁논리를 포기한 것이고, 재벌관행의 개선이라면 부당내부거래 조사 제도 자체나 계좌추적권 연장, 출자총액제한제 강화 등의 필요성이 상당부분 사라지기 때문이다.우선 공정위의 부실조사 흔적은 곳곳에서 확인된다. 기존 그룹별로 7∼8개 계열사를 조사대상으로 선정하던 것을 이번에는 5개씩(현대는 현대차·현대중공업·현대 그룹을 합쳐 5개), 총 20개사만 대상으로 삼았다. 공정위 조학국 부위원장도 "경제상황을 감안, 대상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며 어느 정도 수위를 사전 조절했음을 인정했다.
조사과정에서도 공정위는 LG그룹 2개사에 대해 계좌추적권을 발동했지만, 아무런 법 위반 사실도 적발하지 못했다. 계좌추적권은 원래 상당한 혐의가 있을 때 발동하는 것이지만 "별 일 아닌 것 가지고 계좌추적권까지 발동한다"는 재계 주장만 확인시켜 준 셈이다.
이 결과 이번에 적발한 6대 재벌 부당지원액(900억원) 가운데, 이미 검찰·금융감독원 등이 발표한 SK그룹의 부당지원(737억원)이 대부분이다. 이중에서도 최근 검찰이 SK 비자금 수사와 관련, 발표했던 SK해운의 (주)아상에 대한 부당지원이 527억원에 달한다. 공정위가 자력으로 적발한 부당지원은 900억원중 370억원 밖에 안 된다는 얘기다. 현대에 대해서는 현대상사와 현대증권 등을 조사했지만 단 한건의 부당지원 사실도 적발하지 못했고 부당내부거래의 핵심인 특수관계인과 계열사간 거래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없었다"는 결과만 밝혔다. 나아가 기아차와 INI스틸의 현대카드 유상증자 참여과정에서의 부당내부거래에 대해서는 100억원의 부당지원을 적발하고도, '불가피한 부당지원이었다'는 이유로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김상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은 "공정위가 SK 빼고는 사실상 조사를 안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편에서는 이 같은 조사결과에 대해 실제 재벌의 부당내부거래 관행이 지난 수년동안 개선된 결과라는 시각도 있다. 공정위 장항석 조사국장도 "1998년 이후 네차례에 걸친 집중적인 부당내부거래 조사와 기업 스스로의 노력으로 부당내부거래 자제 분위기가 형성됐다"며 "또한 구조조정으로 인해 부실계열사가 줄어든데다, 저금리로 인한 자금시장 호전으로 부당지원의 필요성도 줄었다"고 인정했다.
재계 등에서는 삼성에 대한 과징금이 2000년 조사때의 100억원에서 2억원으로, LG는 123억원에서 7,000만원으로 줄어든 것을 단순히 봐주기 때문만이라고 설명할 수는 없다는 논리.
더욱이 최근 출자제한 논란이 제기되면서 공정위가 조사 막판에 그 강도를 높였는데도 불구하고 결과가 이렇게 나온 것은 내부거래 관행이 상당부분 개선된 결과라는 주장이다. 두 달간에 걸쳐 계좌추적까지 해가며 조사한 결과가 과징금 7,000만원이라면 부당내부거래 조사의 타당성을 재검토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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