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 미나토구에 사는 회사원 세키구치(30) 씨는 며칠전 이동형 비디오 단말기와 무선 인터넷 장치를 구입했다. 거실 PC와 DVD에 무선으로 연결, 침대에 누워 밤 늦게까지 인터넷 검색이나 비디오 감상을 할 수 있다. 출근 준비로 바쁜 아침 시간에는 화장실에서도 TV뉴스를 볼 수 있어 대만족이다.요즘 일본에서는 '유선 탈출'이 유행이다. 노트북PC, 휴대폰, 개인휴대단말기(PDA), 차량용 네비게이터 등 소형정보기술(IT) 제품의 메카답게 인터넷, 디지털 방송, 심지어 가정용 비디오에 이르기까지 무선 서비스와 이동형 제품이 보편화하고 있다.
초고속 인터넷도 '무선'이 기본
이미 90년대 말에 초고속인터넷이 보급된 우리나라에 비해 일본은 2∼3년 늦게 '브로드밴드'라는 이름으로 비대칭가입자회선(ADSL)급의 초고속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해 최근 인터넷 사용인구가 1,000만 명을 돌파했다. 하지만 일본인들의 무선 인터넷 선호도는 한국보다 훨씬 높다.
국내에서 무선 인터넷을 쓰려는 사람들은 KT의 네스팟(Nespot), 하나로통신의 애니웨이(AnyWay) 등 별도의 무선 인터넷 상품으로 갈아타는 경우가 많다. 반면 일본 네티즌들은 유선을 무선으로 바꿔 주는 '억세스포인트(AP)' 장비를 따로 구입해 기존 유선 인터넷에 연결하는 방식으로 무선 인터넷을 즐기고 있다. 국내 무선 인터넷 서비스 가입자는 전체 인터넷 서비스 가입자 중 3% 미만인 35만 명 정도지만 일본에서는 브로드밴드 서비스 가입자 5명중 1명이 무선인터넷을 쓰는 것으로 추정된다.
인터넷 서비스 업체들도 가입자에게 1세트당 1만2,800엔(12만8,000원)에 이르는 무선 AP 장비를 4,500엔(4만5,000원)으로 할인된 가격에 파는 등 무선화에 앞장서고 있다.
비디오도 움직이면서 감상
가전 제품의 무선화 경향도 두드러진다. 일본인들의 주된 소일거리 중 하나인 비디오 시청이 대표적. 최근 일본 소니에서 출시해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이동형 비디오'는 포스트PC인 '스마트디스플레이'(Smart Display)와 유사하지만 PC에 딸린 무선 단말기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무선 비디오' 역할을 하고 있다.
이동형 비디오는 노트북처럼 들고 다닐 수 있는 14인치 평면 액정 모니터와 받침대로 구성되어 있다. 받침대에는 DVD·비디오·CD플레이어 등을 연결한다. 모니터와 받침대는 무선 인터넷으로 연결됐기 때문에 거실, 자기방, 화장실, 뒷뜰 등 집안 어디든 모니터를 들고 다니면서 비디오를 감상할 수 있다. TV튜너가 장착된 모델은 TV시청도 가능하므로 완벽한 무선 비디오 기기인 셈이다. PC와 연결하면 웹서핑, 문서 작성 등의 기능도 겸할 수 있다. 일본 소니 관계자는 "대화면 제품을 선호하는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좁은 집안 환경, 개인주의의 영향으로 이동성이 뛰어난 소형 제품이 인기"라며 "스마트디스플레이 형태의 무선 비디오 역시 이러한 경향을 반영했다"고 말했다.
이동형 PC, 모바일 디지털 방송
한편 소니, 후지쯔 등 일본 PC업체들은 평면액정(LCD)모니터와 본체가 결합돼 자유롭게 들고 다닐 수 있는 초슬림형 데스크톱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일부는 키보드도 일체형으로 설계돼 노트북PC와 구분이 힘들다. 가격은 200만∼250만원 선. 노트북PC에서는 인텔의 무선 노트북PC 기술인 '센트리노'가 이미 보편화 해 무선 인터넷 보급을 부추기고 있다.
일본은 디지털 이동방송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미 일본 이동방송회사(MBCo)가 내년 7월 정식 서비스를 목표로 도쿄 시내에서 위성디지털멀티미디어(위성DMB) 방송을 시험 서비스 중이다. 도로 위치 및 지도 정보를 제공해 주는 카 내비게이션(Car navigation) 장치와 담배갑 크기의 휴대용 수신 장치를 이용해 디지털 TV방송을 감상할 수 있다. 화질은 VHS 비디오, 음질은 DVD에 약간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 디지털 방식이기 때문에 잡음이나 신호 불량 없이 깔끔한 콘텐츠를 보여준다. MBCo의 미조구치 테츠야 사장은 "미래의 방송은 급속한 디지털화, 개인 통신과의 융합이 특징"이라며 "휴대용 단말기로 언제 어디서나 디지털TV를 시청할 수 있는 위성DMB는 이러한 조류의 선두에 서있다"고 말했다.
/도쿄=정철환기자 ploma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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