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분배의 평등을 유지하면서 고도성장을 달성한 국가로 세계의 주목을 받아 왔다. 1960년대 이후 연 평균 7%의 높은 성장을 40년 가까이 계속하면서, 소득분배 역시 다른 국가들 보다 상대적으로 평등한 상태를 유지하여 왔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쿠즈네츠가 발견한 역(逆)-U자(字) 현상, 즉 후진국이 성장하면서 초기에는 소득분배가 악화되나 이후 점차 분배가 개선된다는 이론에 비추어 보면 한국은 성장 초기에 소득분배의 악화 없이 1인당 실질소득을 지난 40년 동안 10배로 증가시킨 놀라운 기적을 달성한 이례적인 국가이다.그러나 우리 경제도 최근에는 성장률의 하락과 분배의 불평등 심화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올해 성장률은 3% 미만으로 예상되고 있고 실업은 증가하고 있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크게 악화된 소득·부의 격차는 지속되고 있으며 최근 부동산 등 자산가격 폭등은 계층간의 위화감을 크게 하고 있다.
'모두가 잘 사는 행복한 사회'는 누구나 꿈꾸는 것이다. 그러나 성장과 평등을 동시에 달성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경제가 지난 40년간 성장과 분배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었던 큰 요인의 하나는 교육이었다. 초·중등 교육의 빠른 확대는 분배의 불평등을 줄이는 한편 인적자본의 축적을 통한 성장의 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 빠른 기술진보와 산업구조의 고도화로 성장의 동력이 단순 노동력보다는 대졸 이상의 전문 인력 중심으로 바뀌면서 분배와 성장의 조화가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실제 외환위기 이후 분배가 악화된 큰 이유는 산업간, 직종간, 학력별로 근로자 집단간 임금격차가 커졌기 때문이다.
경제학자들은 소득의 불평등을 개선하는 것이 성장을 촉진할 수도, 방해할 수도 있다고 본다. 불평등이 심하면 저소득층의 우수한 자녀가 교육을 받지 못할 수 있으며 정치의 불안정을 초래하여 성장률을 낮출 수 있다. 반면에 고소득층이 상대적으로 많은 저축을 한다면 불평등은 오히려 투자 재원의 확대를 가져와 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
미 하버드대학의 배로 교수가 여러 국가의 역사적 자료를 통계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소득분배의 불평등은 그 자체로 성장률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지는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성장은 인적 자본, 무역 개방도, 거시경제 운용의 건전성, 재산권의 보호와 같은 다른 근본적인 요인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소득 국가에서 소득분배의 불평등이 성장의 저해요인이 될 수 있는데, 이는 소득 불평등 자체의 효과보다는 정부가 소득재분배를 위한 지출을 증가시키는 경우다.
분배의 평등을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기는 하나, 비생산적인 사회복지지출의 증가는 성장률을 낮출 수 있다. 분배를 개선하려는 정책이 잘못하면 저성장을 초래하여 오히려 분배를 악화시킬 수 있음을 많은 남미국가들의 경험이 보여 준다.
현 정부는 출범부터 '분배정책'에 무게를 실었으나 최근에는 '성장정책'으로 기조를 바꾸어 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무현 대통령도 최근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최고의 분배정책'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경기침체를 벗어나기 위해 일시적으로 성장위주 정책을 펴겠다는 것인지, 장기적으로 성장정책을 우선하겠다는 것인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사회복지지출 항목이 내년 정부예산안에서 증가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정부 일각에서는 중·고등학교처럼 대학교간 격차를 인위적으로 줄여 평등을 추구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이러한 평등위주 정책은 장기적인 성장 잠재력을 떨어뜨린다.
사회적 약자의 보호는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성장을 저해하지 않도록 복지정책에도 적절한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는 세계 54위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선진국 수준으로 갖추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이 종 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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