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 정상을 밟고 나면 그다지 기쁘지 않아요. 오히려 오르는 과정에서 더 큰 보람을 느낍니다."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를 정복했던 포스코의 이 인(38·전기제어설비부)씨는 지극히 평범한 직장인이다. 현장 근무복 차림의 그의 모습에선 눈사태와 시속 225㎞의 초강풍, 영하 40도를 넘나드는 추위를 뚫고 정상에 오른 '산사나이'의 강인함을 느끼기 힘들 정도다. 다소 큰 체격(179㎝, 76㎏)일 뿐 인간 한계를 시험하는 최악의 조건을 견뎌낼 만큼 '비범'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는 그러나 "험난하고 아름답기로 소문난 히말라야의 K2봉(8,611m)을 반드시 정복하겠다"는 의지를 숨기지 않는 영락없는 산악인이다.
산골 아이의 꿈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경북 청송군 진보면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적 지겹도록 산을 누비고 다녔다. 산골 아이 대부분이 그렇듯 가난했던 그는 학비와 기숙사비가 전액 면제인 포철공고 전기계량과에 입학, 1984년 2월 졸업과 동시에 포철(현 포스코)에 입사했다. 아버지를 도와 집안일을 돌볼 정도면 족하다는 소박한 꿈을 이룬 셈이다.
주말 취미로 등산을 다니던 그는 86년 가을 포철사보 '쇳물'에서 직장 선배인 이동연(48·설비기술부) 대리의 히말라야 캉충제봉(7,678m) 등정 기사를 읽으면서 '바로 이거야!'라고 무릎을 친 뒤 곧바로 향로산악회를 찾았다.
대부분 포철 직원으로 구성된 향로산악회는 전문 등반을 추구하는 수준높은 산악회였다. 이씨는 "산타기는 웬만큼 이골이 나 별로 주눅이 들지 않았다"며 "암벽과 빙벽 등반이 그렇게 재미있는 줄 미처 몰랐다"고 회고했다.
에베레스트를 향하여
이씨는 '단순히 산에 오르는 알파니즘에 앞서 휴머니즘을 배우자'는 일본 산악인 우에무라 나오미(1953년 매킨리봉 등정 중 실종)의 말을 새기며 '저 높은 곳'을 향한 준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업무는 동료들과 똑같이 하면서 주말을 이용, 산악구보와 빙벽타기 등 몸 만들기에 구슬땀을 흘렸다.
그러나 첫 성공은 5년 기다림 끝에 이뤄졌다. 이동연 대리가 91년 봄 파미르 등반 때 '같이 가자'는 제안을 했고 그는 코르즈봉(7,105m) 도전에 나섰다. 이씨는 "첫 원정치곤 큰 고통없이 등정에 성공,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후 2001년 10월 히말라야 미답봉인 초모구두(5,680m)를 정복한 데 이어 지난해 2002 한일월드컵 성공 개최를 기원하는 에베레스트 원정대에 산악인 엄홍길(43)씨 등과 함께 참가, 5월 16일 정상을 밟는 감격을 누렸다. 그는 "초모구두는 높지는 않지만 세계 최초로 올랐다는 감격에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당시 원정대장을 맡은 그는 등반대장인 한살터울 후배 박재석(37·포스코 기술연구소)씨에 대해 "이젠 눈빛만 봐도 통할 정도"라며 형제 이상의 애정을 보였다.
K2야 기다려라
이씨는 이동연 대리와 박재석씨를 자신과 함께 '포스코 산악인 3총사'라고 부른다. 무미건조한 삶 속에서 희망과 꿈의 세계를 이끌어준 이 대리는 영원한 인생 선배고 91년부터 인연을 맺은 박씨는 평생 동지라고 했다. 이씨는 현재 회원이 50명인 향로산악회 회장을 맡고 있다.
3총사는 모두 포스코에서 맡은 일을 충실히 해내는 모범사원으로 소문나 있다. 이동연 대리는 "95년 에베레스트 등반 때 정상을 눈앞에 두고 악천후 때문에 포기했던 순간이 가장 힘들었다"며 "일상 생활에서도 고통을 이겨내면 반드시 기쁨이 찾아온다는 신조로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왜 K2봉에 오르려 하느냐는 질문에 한결같이 "수많은 산악인들이 좌절을 맛본 K2봉에서 한국인과 포스코인의 자존심을 떨치고 싶다"고 답했다. 이들은 연말 또는 내년 초 K2봉 등반에 나설 계획이다.
/이종수기자 j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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