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긴 건 귀여운데 맛은 시고 떨떠름해." 새빨간 아기구슬 모양의 가막살나무 열매를 입안에 쏙 집어넣고 눈살을 찌푸리던 영은(10·여)이가 맛 품평을 했다. 환경지도자협의회 김종복(38·여)씨가 "많이 먹으면 배탈 나. 변으로 씨를 퍼뜨리는 새가 먹기 좋게 (열매가) 예쁜 거야" 하고 일러줬다. 정자에 앉은 아이들은 안경알만한 돋보기(루폐·Lupe)로 가로로 자른 부레옥잠 단면을 들여다보며 "공기방울이 여기서 나온대. 신기하다, 그치?"를 연발했다. 아이들의 공책은 연필로 삐뚤삐뚤 그린 신기한 꽃과 나무 이파리로 가득 찼다.2일 경기 성남시 중원구 은행1동 은행공원 자연생태관찰원. 이날 공원에는 자연체험 학습을 하러 온 상원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의 "이건 뭐야" 하는 질문과 "까르르" 웃음합창이 꽃을 피웠다.
다세대 주택이 촘촘히 얽히고 설킨 동네와 어깨를 맞댄 은행공원은 국내 최대 식물원인 한택식물원을 벤치마킹한 '꼬마 한택식물원'. 공원 조성에 도움을 준 곳도 한택식물원이다. 1만 여 평 규모로 5분의1 수준이지만 향기원 덩굴식물원 등 13개 구역으로 나뉜 공간 구성이 아기자기하다.
공원 부지는 묘목을 키우는 양묘장과 배수지였다. 성남시는 양묘장 일부와 쓸모없게 된 배수지 터에 2001년부터 우리 꽃과 나무를 심어 주민들이 자연을 체험할 수 있는 쉼터로 꾸몄다. 이왕 시작한 일, 제대로 하자는 생각으로 시 조경팀 직원들이 견학과 연구를 거듭한 끝에 주제별로 식물을 나눠 심어 푯말을 달고 연못을 파고 정자를 세웠다.
이렇게 해서 백송 등 85종 7,473그루의 키 큰 나무, 분꽃나무 등 62종 8,155그루의 키 작은 나무, 가는잎할미꽃 등 131종 4만4,350가지의 꽃이 오밀조밀 자라는 자연생태관찰원이 탄생했다. 잔디광장과 온실, 생태연못(2개)과 정자(4개)도 빼놓을 수 없는 자랑거리다.
꽃 단장을 했으니 손님 모셔오기도 해야 할 터. 5월부터는 주부로 구성된 환경지도자협의회 회원들의 도움을 받아 관내 초등학교 학생들을 상대로 자연체험학습교실을 열고 있다. 아이들은 열매도 따먹고 식물 표본 관찰도 하고 억새 밭에 몸도 숨기면서 답답한 학교를 벗어나 환경의 소중함을 배우고 있다. 내년부턴 주말에 일반인 대상 자연체험학습교실을 열 예정이다.
자랑은 이쯤 해두고 공원 안으로 들어가보자. 한국전쟁 때 미국 이민 갔다 돌아온 일명 '미스김 라일락'(정향나무)과 산초나무 백리향 등 향기 식물이 자라는 향기원, 등나무 으름 등 10종의 덩굴식물이 기어오르는 덩굴식물원, 참나리 하늘나리와 삼지구엽초 등을 심은 나리원과 약용식물원, 노란 물결을 살랑이는 들국화원, 척박한 땅에 자라는 식물들의 보금자리 기린초원 등이 허리춤을 붙잡는다.
단풍나무숲엔 복자기 청단풍 중국단풍이 화려한 패션쇼를 할 채비를 하고 있고 백발을 휘날리는 억새 물결(억새원)에 파묻혀 있으면 성남 시가지가 한눈에 달려온다. 온갖 벌레와 수초로 소생태계를 이룬 수생식물원도 볼거리.
환경을 생각하는 따뜻한 손길도 곳곳에 스며 있다. 35m 배수지 콘크리트 벽을 허물지 않고 전시벽으로 꾸미고 야외공연장 무대와 객석은 바위만으로 만들었다. 천연기념물 미선나무(1그루)와 솔나리, 둥근 잎 꿩의 비름, 개느삼 등 보호종도 8개나 된다.
지하철 8호선 단대오거리역에서 버스(55, 33번)를 타고 가다 중원초교 앞에서 내려 큰산꼬리 구절초 코스모스가 내미는 오색 웃음과 가을 향기를 따라가면 된다. 문의 (031)729-5330∼3
/성남=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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