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밤 서울 동작구 흑석동 중앙대 앞 '걷고싶은 거리'. 자정이 지나자 옛 정문 자리였던 공터에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10대 남녀 학생 7∼8명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맥주, 소주가 담긴 봉투를 들고 학교 안 건물 뒷편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재수생 최모(19)군은 "대학생이 된 기분도 만끽하고 수험생활의 스트레스도 풀 겸 해서 친구들과 자주 와 술을 마시곤 한다"고 말했다.이들을 뒤쫓아가는 동안 눈에 띈 캠퍼스 곳곳의 휴지통은 쓰레기로 가득 차 있었고, 구겨진 신문들과 술병들이 주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학내 중앙차량통제소에서 근무 중이던 김모(52)씨는 "담장이 없어진 뒤로 매일 쓰레기 때문에 적잖이 골머리를 앓는다"며 "심야에는 도로 건너편 일부 상가 주민들이 쓰레기를 무단 투기하는 광경도 종종 목격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국내 최초로 정문 주변 담장을 허물고 캠퍼스 전면 개방을 실시한 중앙대는 옛 담장 자리에 걷고싶은 거리를 만드는 등 자연 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해 주민은 물론 재학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그러나 담이 사라진 지 1년째 접어든 지금 대학측은 쾌적한 캠퍼스 환경, 시설물 보안 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매일 오전 캠퍼스를 청소하는 박모(47·여)씨는 "담이 없어진 뒤 쓰레기 수거량이 크게 늘어 도무지 쉴 틈이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캠퍼스 출입이 자유로워지자 '걷고싶은 거리'는 밤이면 일부 중·고생들의 탈선 장소로 둔갑하고 있다. 중앙대에서 20년 넘게 근무했다는 방호원 장모(54)씨는 "쓰레기 처리도 문제지만 어린 학생들이 재학생들과 주먹다짐을 벌이는 등 충돌도 잦아 밤 근무에 어려움이 많다"고 푸념했다.
때때로 출몰하는 오토바이 폭주족들도 골치거리. "문과 담이 없다 보니 이리저리 빠져나가 잡을 수도 없다"는 것이 방호원들의 공통된 하소연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연세대, 고려대, 한양대 등 중앙대의 뒤를 이어 담장 없애기 운동에 동참하려던 서울 주요 대학들은 보호벽이 없어질 경우의 부작용을 최소화 하기 위한 방안 마련에 분주하다. 내년에 캠퍼스 동쪽 동문회관에서부터 정문, 대운동장에 이르는 1.5㎞ 구간의 담을 철거할 예정인 연세대는 일부 학생들의 선결과제 해결 요구가 잇따르자 이를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 연세대 총여학생회측은 최근 담장 허물기와 관련, 학교측에 교내 성폭력과 관련한 안전망 확충을 요구했다. 총여학생회 관계자는 "담장 제거를 통한 대학공개는 사회적 책임이지만 안전시스템이 없다면 신촌 일대 밤거리의 위험성이 고스란히 학내 공간으로 전가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해 300m 길이의 담장 제거 공사를 시작하는 한양여대측은 아예 보안 용역업체 직원을 대거 고용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기획처 발전협력팀장인 정은주 교수는 "불량배나 폭주족들이 무시로 드나들어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가장 시급하다"고 말했다.
중앙대측도 담장 제거 후 대학과 지역사회가 연계된 안전망 확충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대학 관계자는 "경찰의 학교 인근 야간 순찰 강화, 주민들의 자율방범 활동 등이 병행 되야 자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준택기자 nagne@hk.co.kr
김명수기자 lecero@hk.co.kr
신재연기자 poet33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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