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절인 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4가의 H, K아파트 단지. 800여세대가 넘는 이 아파트 단지에서 태극기를 내건 집은 겨우 10여세대에 지나지 않았다. 주민 양모(38·여)씨는 "요즘 국경일마다 태극기를 게양하는 집이 얼마나 되겠느냐"며 "태극기를 어디서 파는지도 잘 모르겠다"고 시큰둥하게 말했다.지난해 한일 월드컵을 통해 새로운 문화 상징물로 각광받았던 태극기가 다시 홀대받고 있다. 1일 국군의 날 행사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사열차량에 4괘(卦)중 하나가 잘못 인쇄된 '불량 태극기'가 내걸려 국가적 망신을 샀는가 하면 연이어 이어진 연중 마지막 국경일인 개천절에도 태극기가 찬밥 신세이기는 마찬가지다.
한국일보가 3일 서울 종로나 대학가 등을 찾은 시민 100여명을 상대로 면접 취재한 결과, 태극기의 4괘 길크기나 태극 모양의 지름 등 세부적인 것은 차치하고 개략적인 태극 모양과 4괘의 위치 등을 올바르게 그릴 줄 아는 시민은 10여명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제대로 아는 경우는 대부분 중고생들이었고 중장년층은 태극기의 규격에 대해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S대 학생 최모(28)씨는 "태극기를 보기만 했지 중학교 졸업 후 그려볼 일이 없어 잊어버렸다"고 답했다. 국회의원들에게도 태극기 규격에 대해 전화조사를 벌이려 했으나 극력 회피해 성사되지 않았다.
태극기 연구가 송명호(53)씨는 "2001년에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태극기를 가장 정확히 그린 집단은 중학생이었으며 대학생과 일반인 중 제대로 그릴 줄 아는 사람은 30명 가운데 1∼2명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이날 태극기를 제대로 그린 김재만(34·자영업·서울 관악구 봉천동)씨는 "태극기에는 백의 민족인 우리나라 국민들이 하나가 돼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는 의미도 담겨 있다"며 "대통령 의전용 국기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정부 관계자들이 어떻게 나라를 발전시켜 나갈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국기 판매소인 전국 동사무소와 우체국에 태극기 납품을 대행하는 국위선양연합회에 따르면 올해 제작 판매한 태극기 수는 15만개 이하로 지난해(30만개)보다 절반 이하로 줄었으며 민간 태극기 제작업체도 소규모 영세업체여서 존폐 위기에 처해 있다. 국위선양연합회 박근철(66) 회장은 "요즘은 TV에서도 태극기를 구경하기가 어렵다"며 "정부 조차 태극기 관련 홍보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태극기 선양운동 중앙회 관계자도 "태극기 홀대를 막기 위해서라도 6월14일을'국기의 날'(Flag Day)로 정해 기념하는 미국처럼 우리도 기념일을 제정, 국기의 중요성을 환기하는 다양한 이벤트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태극기 그리는 법은 www.hankooki.com참조.
/이준택기자 nagne@hk.co.kr
김명수기자 lecer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