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루치아노 베네통·후쿠하라 요시하루 김창남 옮김 생각의나무 발행·9,300원이탈리아 패션업체 베네통과 일본의 화장품업체 시세이도(資生堂)는 각각 독특한 기업문화를 갖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베네통은 흑인 여성이 백인 아기에게 젖을 먹이거나 수녀와 신부가 키스하는 모습 등 파격적 내용의 기업 이미지 광고로 동성애, 에이즈, 인종차별 등 사회적 이슈를 환기해 화제가 되곤 한다. 시세이도는 동양의 미학과 서양의 과학, 비즈니스와 테크놀로지를 결합한 경영 철학으로 고품격 이미지를 굳혔다.
'베네통과 시세이도, 젊음에게 말한다'는 이 두 기업의 대표인 루치아노 베네통과 후쿠하라 요시하루가 2001, 2002년 다섯 차례에 걸쳐 나눈 대담을 담은 책이다. 세계의 패션과 미용을 주도하는 기업의 CEO로서 이들은 가치관, 개성, 시대, 젊은이, 21세기의 다섯 가지 주제를 놓고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이들은 특히 미래의 주역인 젊은이들에게 크나큰 애정을 표시하고 있다. 기업을 경영하면서 얻은 깊이 있는 경험과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얻은 지혜를 담담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들려준다. 책의 무게중심은 경영철학과 성공담보다는 인생론 혹은 세상을 보는 눈에 맞춰져 있다. 두 사람은 과학기술과 디지털 시대를 목도하면서 아날로그와 인간미를 강조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환기시키며, 획일적 세계화에 맞서 개별 문화의 고유성을 보존하면서도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일깨운다.
"기업은 경제적 성공을 추구하는 것 외에 기업이 본래 지녀야 할 도덕과 윤리, 즉 정의와 미의식이라고도 할 수 있는 고유의 가치관을 확립해야 한다. 경영과 윤리가 균형을 이루면서 발전하는 기업만이 21세기에도 살아남을 수 있다"(후쿠하라 요시하루) "세계적인 흐름과 힘을 인식하는 가운데 서로 다른 나라의 문화, 전통, 특징을 중시하고 인정함으로써 더욱 성숙한 가치관이 뿌리내릴 것이다"(루치아노 베네통)
문화적 다양성과 다름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관용의 정신, 인류애에 대한 강조가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다. 이들의 생각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생각은 지구적으로, 행동은 지역적으로."
도덕군자의 뻔한 설교처럼 들릴 수도 있는 이런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것은 두 사람의 연륜과 경험이다. 체험을 바탕으로 터득한 지혜를 들려주기 때문에 억지스러운 구석이 전혀 없고 설득력이 강하다.
경영자로서 어떻게 차세대 리더를 키울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베네통은 젊은이에게 프로젝트를 맡겨서 실수가 나오면 '그럴 수도 있다, 더 잘 해보라'고 격려하지만, 중견의 프로가 같은 잘못을 하면 반드시 책임을 묻는다고 한다.
루치아노 베네통과 후쿠하라 요시하루는 이번 대담집 말고도 각자 경영철학과 세계관을 밝힌 책을 내놓은 바 있다. 베네통 광고에 나체로 등장하는 등 튀는 행동을 자주 하는 멋쟁이로 소문난 루치아노 베네통은 자서전 '베네통 이야기'(명진출판, 1995)를 썼다. 후쿠하라 요시하루는 더 부지런한 문필가여서 '난세지략 유연성의 장자'(예문, 2002), '문화경제학 (이케가미 준 등과 공저, 나남, 1999) '21세기에는 문화가 최고의 자본이다'(현실과 미래, 2002)를 썼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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