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라니 켐러 지음·김경연 옮김 토토북 발행·4∼7세용·8,000원아름다워서 좋은 그림책, 알차고 재미있는 동화는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뉘앙스가 풍부한 책, 알듯 모를 듯 아이들을 흠뻑 이야기 속으로 빨아들이는 그림책은 그리 흔하게 만날 수 없다. 독일의 젊은 작가가 지은 이 그림책은 시의 한 구절처럼 ' 사람 사는 집'이라는 한 마디로 시작한다. 옆 장에는 종이로 지어 놓은 것 같은 집 몇 채와 나무 인형 둘이 그려져 있다. 맑은 하늘에 흰구름이 두둥실 떠 있지만 파스텔 조의 그림에는 무언가 환상적인 분위기가 드리워져 있다.
다음 장에서는 문고리에 줄이 달린 집의 문이 줌인 되었고, 나무 인형들은 문 쪽으로 약간 다가서 있다. 그림을 설명하는 옆의 지문은 '나무 사람 사는 집/집에 들어가는 문'이다. 책은 이런 식으로 한 줄씩 말을 덧붙여 가면서 다양한 각도와 구성으로 집과 나무인형을 보여준다. 책장을 넘기면 열쇠를 묶은 줄, 줄을 갉는 생쥐, 생쥐를 문 고양이, 고양이를 문 강아지, 강아지를 잡은 사냥꾼이 등장한다. 마지막에는 나무인형이 사냥꾼과 강아지를 들고 서 있다. 하늘엔 별이 총총, 밤이 됐다.
책을 한번 쓱 훑고 나면 과연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싶을 것이다. 눈썰미가 밝은 사람이라도 이게 어느 아이가 만들어내는 일종의 나무인형극이라는 걸 눈치채긴 쉽지 않다. 밝은 하늘이 다시 열리고 처음처럼 '여기 나무 사람 한 사람'으로 바뀌는 책의 마지막 장에 답이 숨어 있다. 이야기를 꾸미는 아이의 그림자가 나무 인형 옆으로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에 특별한 의미는 없다. 나무 인형 둘, 생쥐와 고양이, 강아지, 그리고 집 몇 채가 있는 자그마한 무대에서 아이가 만들어낸 별 의미 없는 상황일 뿐이다. 하지만 이 그림책은 경탄할만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책을 보는 것이 무슨 수수께끼를 푸는 느낌이다. 등장 인형과 동물은 원근법에 따라 정해진 크기 없이 커졌다 작아졌다 한다. 그린 이나 인형극 연출자인 아이의 마음의 흐름을 반영한 것이 아닐까 싶다.
더불어 이 책은 그림처럼 인형극을 한 번 만들어보고 싶은 호기심, 그 인형극에서 한껏 상상의 나래를 펴보고 싶은 욕구를 강력하게 자극한다. 그리고 참으로 묘하게도 독자들이 그 인형극 속에서 정말 멋있는 이야기를 연출해낼 것처럼 느끼도록 만든다. 독일의 유력 일간지 디 차이트와 브레멘 라디오 방송사에서 공동 주관하는 아동·청소년 문학상인 룩스(LUCHS)상 올해 수상작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