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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그 많은 비자금 어디에 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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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그 많은 비자금 어디에 썼나

입력
2003.10.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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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길승 SK그룹 회장이 뇌물공여 혐의로 또 사법처리될 것 같다. 2000년부터 2001년 사이 SK해운이 2,000억원대의 자금을 장부에서 누락시킨 혐의로 고발된 사건을 수사 중인 대검 중앙수사부는 손 회장이 지난해 대선과 2000년 16대 총선 당시 여야 정치인들에게 수백억원대의 자금을 제공한 사실을 확인했다 한다.손 회장은 지난 6월 SK 글로벌 분식회계 사건에 개입된 혐의로 기소되어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이다. 우리 재계를 대표하는 전경련 회장이 한 해에 두 번씩이나 재판정에 서게 되었으니, 한국 기업의 대외 신인도가 어떻게 될지 걱정이다. 그런 사람이 회원들에게 투명경영과 기업윤리를 입에 담는다면 어떤 반응이 나올지도 궁금하다.

SK그룹은 선거 때 여야에 골고루 몇 십억원씩 정치자금을 나눠주기도 했고, 영향력 있는 일부 정치인들에게는 각종 이권청탁의 대가로 뇌물도 주었다. '보험성' 정치자금과 뇌물이 혼합된 셈이다. 구 정권 권력자들이 현대에서 150억원 또는 200억원의 돈을 받은 사실에 충격을 받아서인지, 또 수백억원 소리가 나오는데도 그리 놀라는 사람이 없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그보다 장부조작으로 몰래 빼낸 돈이 2,000억원이 넘는다는데 나머지는 어디에 썼는지, 다른 재벌들은 선거 때 얼마씩 갖다 주었는지, 그것을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다.

우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부정한 정치자금은 일절 받지 않겠다는 다짐을 들어 왔다. 정치자금법이라는 것을 만들고 권력자 주변 사람들이 공직을 사양하는 일까지 있었지만, 정경유착은 더 심해지고 권력자들의 뇌물 단위는 커졌다. 검은 돈을 주고받은 사람들이야 처벌을 받으면 그뿐이지만, 자꾸 커지는 정치불신과 정치인 혐오가 나라 운명을 망치지 않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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