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일러 코웬 지음, 임재서·이은주 옮김 나누리 발행·1만2,000원미국 경제학자 타일러 코웬(조지 메이슨 대 교수)이 쓴 '상업 문화 예찬'(원제 'In Praise of Commercial Culture', 1998)은 이처럼 통념을 뒤엎는 사례로 넘친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문화의 상업성, 예술의 상업성을 옹호한다. 더 나아가 예술을 타락시키고 목 조르고 있다고 자주 비난 받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원리가 실은 예술을 성장시킨 원동력이라고 주장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다양한 예술적 시각이 공존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새롭고 훌륭한 예술품이 지속적으로 생산되도록 도와주며, 고급문화와 저급문화를 모두 뒷받침하고, 소비자와 예술가의 취향을 세련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설득력 있게 펼치기 위해 그는 시장과 돈, 그리고 예술적 창조의 사회적 메커니즘을 드러내고, 문화사 전반에 걸쳐 이런 메커니즘이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검증한다. 집중적으로 다루는 분야는 음악과 문학, 그리고 시각예술이다. 지은이는 바흐부터 비틀스, 오늘날의 랩과 테크노음악에 이르기까지, 미켈란젤로나 라파엘로 등 거장의 르네상스 미술부터 지금 활동하는 작가들의 현대미술까지, 인쇄술 보급 이전의 중세문학부터 상업출판이 자리잡은 근대 이후 오늘의 대중소설까지 두루 훑는다.
그의 목적은 상업성이 예술을 망친다는 일방적 비난이 부당하다고 강조하는 데 있지, 돈의 절대적 지배력을 부각하려는 게 아니다. 돈은 돈벌이에만 관심이 있는 작가들을 타락시킬 뿐, 창조적인 작가들에겐 결코 독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마음껏 창작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토대가 된다고 지적한다.
상업적 대중문화는 저급하다는 생각도 편견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대중문화의 대척점에 이른바 '고급문화'를 배치하는 것은 합리적 판단이 아니며 지적 우월감에 사로잡힌 엘리트주의일 뿐이라고 비판하면서 균형 잡힌 시각과 문화적 다양성을 촉구한다. 대중문화와 고급문화로 우열을 가리는 것이 옳지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는 이 책에 수두룩하다. 예컨대 대문호 셰익스피어조차 당대에는 대중의 싸구려 취향에 영합하는 저속한 예술가로 치부됐다. 훗날 출판시장이 크게 성장한 후에야 독자와 비평가들이 그의 작품을 차분히 다시 읽으며 재평가를 했다. 대중은 실은 매우 똑똑하며, 그들의 변덕스러운 취향은 시장의 역동성과 맞물려 예술의 진보를 이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그는 "걸작이란 통상 싸구려와 쓰레기가 넘쳐 나는 풍토에서 자란다"며 아직 역사적 검증을 거치지 않아서 옥석이 뒤죽박죽 섞여있는 오늘의 예술을 과거 거장들의 걸작에 비하면 별 볼 일 없는 것으로 보아 아예 외면하는 우를 범하지 말자고 호소한다. '옛날이 좋았지' 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그는 당대인들을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 선 난쟁이'로 묘사한 한 격언을 비틀어 펀치를 날린다. "어느 시대의 예술가도 다른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 선 거인"이라고. 덧붙여 돈 냄새에 찌든 것처럼 보이는 현대예술이 부정적인 요소가 있는 건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어느 시대보다 왕성한 생산력을 과시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이처럼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긍정적 힘을 보여주고, 이를 바탕으로 진화를 거듭하는 예술의 미래를 낙관한다. 그러나 저자는 결코 시장 만능주의자가 아니다. 그는 시장의 부정적 측면도 충분히 알고 있다. 상업성은 예술의 적이라고 보는 입장과 반대로 고급문화는 반동적 소수 엘리트의 전유물이라고 비난하는 입장이 맞붙으면 흔히 소모적 논쟁으로 끝나곤 한다. 이런 논쟁에 이 책은 비교적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을 제시하는 자료가 될 만하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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