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소설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작가들에게 있어 두 번째 작품을 내는 일은 힘들다. 첫 번째 작품이 성공적이었을 경우엔 더욱 그러하다. 하퍼 리는 첫번째 소설 '앵무새 죽이기'로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1961년 퓰리처상까지 받았지만, 아직 후속 작품 없이 은둔생활을 하고 있다. 1993년 '처녀, 자살하다'로 대대적인 주목을 받았던 제프리 유지나이드는 10년 후에야 두 번째 작품 '미들 섹스'를 내놓았다. "소설은 나를 가두는 감옥이 되어버리고, 나는 스스로 그 감옥을 지키는 간수가 되었다" 라고 그는 두 번째 소설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이 까다로운 관문을 비평가들의 찬사와 함께 통과하고 있는 두 명의 동양계 여성 작가들이 있다. 한 명은 인도계인 줌파 라히리, 다른 한 명은 한국계인 수잔 최이다. 한국인 아버지와 러시아계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수잔 최는 1999년 '외국인 학생'으로 문학잡지 '뉴요커'의 표현처럼 '상서로운 데뷔' 를 하였다. 그로부터 4년 만인 지난 8월 출간된 두 번째 소설 '미국 여자(American Woman)' 또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여러 비평가들의 찬사와 더불어 문화비평 웹진 '살롱'에서는 9월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이 책은 1974년 패티 허스트 납치사건이 소재다. 언론 재벌인 허스트 가의 딸 패티 허스트가 극좌파 단체인 심바이어니즈 해방군에 의해 납치됐던 이 사건은 패티 허스트가 납치범들과 동조하여 범죄 행각을 벌임으로써 더 유명해졌다. 과격파인 일본계 미국인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이 책은 1970년대 극좌파 젊은이들의 삶을 통해 권력, 계급, 인종 등의 무거운 주제들을 시적인 감수성과 유머로 다루어내고 있다.
영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줌파 라히리는 1999년작 단편모음집 '질병의 통역사'로 신인 작가로는 얻기 힘든 대단한 주목을 받았다. 2000년에는 작가 최고의 영예인 퓰리처상과 펜·헤밍웨이 상을 받았고, 지금까지 29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처녀작 발표 이후 역시 4년 만인 지난 9월 출판된 '동명이인 (The Namesake)'도 이미 뉴욕타임스 등 주요 매체로부터 '등장인물의 온도를 읽어내는 정밀한 촉감'을 갖고 있는 소설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라히리는 이 책에서 인도인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결코 가볍지 않은 문화의 무게와 함께, 고골이라는 이상한 이름이 주는 부담을 안고 살아야 하는 한 청년의 삶을 예민한 필치로 그려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이들은 뉴욕에 살고 있는 동료 작가로 '미국 여자'의 뒷표지에는 라히리의 찬사가 담겨 있고, 수잔 최는 책머리에서 라히리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있다. 미국에서 동양계 여성은 아직 주변적인 존재이다. 이러한 존재로서의 삶을 성공적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그들의 문학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자못 기대가 된다.
박 상 미 재미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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