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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명화의 비밀

입력
2003.10.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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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트 호크니 지음·남경태 옮김 한길아트 발행·6만원"명화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암호는 단 두 개의 단어면 충분하다. 렌즈와 거울."

이 책의 저자인 영국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66)는 이렇게 주장한다. 그는 15∼19세기 서구 미술사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가들인 카라바조, 벨라스케스, 얀 반 에이크, 앵그르 등이 거울과 렌즈를 이용해 유명한 걸작을 그렸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이려 한다.

호크니의 이 책은 2001년 출간돼 구미 미술사학계에서 커다란 논란을 일으켰다. "예술적 천재성이란 타고 나는 것"이라는 명제를 그가 공격한 셈이기 때문이다. 천재의 손 끝에서 명화가 탄생한 것이 아니라, 거울과 렌즈를 이용한 광학적 기술에 의존해 그토록 섬세한 묘사가 이뤄졌다면 그것은 사기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의 이런 주장은 1999년 1월 런던 내셔널갤러리에서 열린 앵그르의 드로잉을 보면서 비롯했다. 1829년 앵그르가 그린 한 부인의 초상 드로잉은 화가인 호크니가 보기에 이른바 '눈 굴리기'로 더듬어 그렸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만큼 그 선이 빠르고 정교했다. 거기서 그는 20세기 팝아트 작가인 앤디 워홀이 투영기를 사용해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호크니는 이런 의문에서 출발해 16세기 초 르네상스 시대의 명화들이 이전의 그림들에 비해서 묘사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이유를 추적해 간다. 거기서 그가 구한 답이 바로 그 시대의 화가들이 렌즈와 거울이라는 광학장치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유명한 얀 반 에이크의 그림 '아르놀피니의 결혼'에서 배경 중앙에 그려진 볼록거울이나, 라파엘로가 교향 레오 10세를 그린 그림에서 교황이 왼손에 들고 있는 렌즈는 단순한 그림의 소품이 아니라 이들 화가들이 실제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서 거울과 렌즈를 사용했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그러나 저명한 미술사학자 곰브리치조차 르네상스 시대에 왜 그렇게 많은 천재 화가들이 등장했는지 명쾌하게 밝혀내지 못했던 것처럼, 호크니의 이런 의문은 추정일 뿐 실제 당시 화가들이 광학장치를 사용했다는 어떤 기록이나 증거도 남아있지 않다. 호크니는 책에서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실제 실험실 같은 방을 만들어 거울과 렌즈를 이용해 수백 장의 그림을 그린 자료까지 제시하고 있다.

어쨌든 집요한 의문과 실험으로 과거 거장들의 비밀스러운 작업과정을 엿보게 해준 호크니의 주장은 흥미로운 만큼 지속적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서 드는 의문은 이런 것이다.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사진까지 예술 작품으로 인정 받고 있는 시대에 화가들이 거울과 렌즈를 이용해 그림을 그렸다고 해서 무슨 문제가 될까. 팝아트 화가이자 사진작가이기도 한 호크니가 내린 결론도 그렇다. "내 주장이 미술의 신비를 없애버리는 것은 아니다. 그림의 힘은 영원할 것이다. 손으로 만들어진 그림은 인간의 상상력"이라는 것이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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