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10월3일 독일이 통일됐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으로 소련군과 서방 연합군의 분할 통치가 시작된 지 45년 만이었고, 동베를린을 수도로 한 독일민주공화국(동독)과 본을 수도로 한 독일연방공화국(서독)이 수립돼 분단이 정치적으로 공식화한 지 41년 만이었다. 독일의 통일로 한국은, 딱히 분단 상황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중국-대만을 제외하면,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 국가가 되었다.독일 통일은 독일민주공화국을 구성하고 있던 주(州: 란트)들이 독일연방공화국에 가입하는 형식으로 이뤄진 '흡수 통일'이었다. 통일의 기쁨은 잠시 전독일인을 들뜨게 했지만, 이 역사적 사건은 새로운 문젯거리들의 시작이기도 했다. 동독 지역의 경제 재건과 정치적 과거 청산, 행정·사법 체계의 구축, 재산권 처리 문제 등은 통일 얼마 뒤부터 독일 전체를 뒤숭숭하게 만들었고, 그 문제들은 지금까지도 여진을 남기고 있다. 더욱 근본적인 것은 문화적 감수성의 차이였다. 통일 직후의 한 여론조사는 서독 지역의 독일인들이 동독 출신의 동포들에게보다 오히려 프랑스인들에게 더 동질감을 느낀다는 결과를 내놓아 충격을 주기도 했거니와, 서로를 '동쪽 것'(오시), '서쪽 것'(베시)이라고 경멸의 뉘앙스를 담아 부르는 관행에서 표나게 드러났던 통일 초기의 이질감은 아직도 말끔히 가셔지지 않았다.
분단의 역사가 더 길고 양 체제의 이질성이 훨씬 더 큰 한국의 경우는 통일 뒤에 겪게 될 문화적 감수성의 차이가 독일에 비할 바가 아닐 터이다.
지난 8월 대구에서 유니버시아드가 열렸을 때, 우리는 이런 문화적 감수성의 차이를 북쪽 응원단의 눈에 선 행동들에서 씁쓸히 확인한 바 있다. 무턱대고 통일을 서두르는 것보다 우선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교류를 확대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은 그래서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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