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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정치가 망치는 고속철도

입력
2003.10.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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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나 다를까.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경부 고속철도 울산 역 신설은 당연하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언급이 있은 뒤, 경기 평택, 충북 오송, 경북 김천 등의 고속철도 역 신설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왜 울산은 되는데 우리는 안 되느냐"는 해당지역 주민들의 요구도 당연하다. 그들은 울산보다 자기 지역 고속철도 역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할 것이다.대구-부산 구간 중 천성산 금정산 관통노선이 환경을 해친다는 일부의 주장을 받아들인 노 대통령의 노선 재검토 지시로 몇 달 동안 공사가 중단됐다가, 원래 노선대로 하기로 결정된 것이 얼마 전이다. 개국 이래 최대의 국책사업이 이렇게 정치의 힘에 좌지우지되면 그만큼 공사가 늦어지고 사업비가 늘어날 수 밖에 없다.

늘어나는 역의 수 만큼 고속철도 운행시간도 늘어나게 된다. 정차시간을 1분으로 잡아도 차가 서려면 멀리서부터 속도를 줄여야 하고, 출발 후에는 한동안 제 속도를 내기 어려워 한 정거장 서는데 7분이 소요된다. 역이 4개 생기면 운행시간이 28분 늘어나 서울―부산을 1시간 40분대에 주파하겠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워진다.

평택은 미8군 이전 후보지이기 때문에, 오송은 청주 등 중부 내륙 주민들의 교통편의 때문에, 김천은 대구역과 너무 멀어서…. 이런 이유들이 부당하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런지 건설교통부 당국도 "중간 역을 일부 늘리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운을 떼고 있다. 예산이 마련되는 대로 착공하리라는 보도도 나왔다. 그러면 2단계 사업기간은 또 얼마나 늘어질지, 예산은 얼마나 더 들게 될지 모른다.

공사가 시작된 지 12년이 된 시점에서, 내년 4월 개통을 앞두고 시운전을 하고 있는 단계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지 않아도 경부고속철도 사업은 정치의 힘에 의해 노선이 휘고 공사에 차질이 빚어지는 등 기억하기도 불쾌한 일들이 많았다.

우선 경주를 경유해 돌아가는 노선 자체가 정치적인 결정이었다. 처음 검토된 노선은 당연히 대구에서 부산으로 직진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총 300여㎞ 거리다. 그런데 관광 1번지 경주를 거치지 않을 수 없고, 포항 울산지역 주민들의 편의도 고려해야 한다는 정치논리가 끼여들어 100여㎞를 돌아가게 된 것이다.

착공을 너무 서둘러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사업비를 엄청나게 낭비한 것도 모두 정치의 개입 때문이었다. 고속철도 기본설계가 진행 중이던 1990년 실무자들은 차량과 노반공사 설계를 한꺼번에 하는 토털 시스템을 택했다. 경험이 없으니 선진국에 맡기자는 안이었다. 그러나 토목공사는 우리도 할 수 있지 않느냐는 반론이 제기돼 노선도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착공을 서둘렀다. 임기 안에 착공을 하고싶었던 노태우 정권의 과욕이었다. 노선결정을 서두르다 현장확인 절차가 생략된 졸속안이 나왔다. 수 많은 폐 갱도가 있는 화성 상리터널 구간이 대표적인 오류였다.

92년 6월 착공당시 고속철도 용지 매수실적은 10%도 안되었다. 차량선정이 안된 상태에서 노반 실시설계를 했다가, 차량이 프랑스의 TGV로 결정되자 설계를 차량에 맞도록 고치는 법석을 떨었다. 대전과 대구 통과노선 지하화 문제가 몇 번씩 왔다갔다 하는 동안 공사가 3년 이상 늦어졌고, 사업비도 1조원 이상 추가되었다. 공정이 50%도 안된 시점에서 전동차부터 도입한 것은 한편의 코미디였다. 이런 시행착오로 당초 4조원 대였던 사업비가 20조원을 훨씬 넘었다.

경부 고속철도는 이름 그대로 서울과 부산을 최단시간에 잇는 철도다. 중간에 여러 번 서면 고속철도가 될 수 없다. 제발 정치는 고속철도 사업에서 좀 물러가 주었으면 좋겠다.

문 창 재 논설위원실장 cjm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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