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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과 순응 이데올로기 허구성 폭로/올 노벨문학상 존 쿳시의 작품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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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과 순응 이데올로기 허구성 폭로/올 노벨문학상 존 쿳시의 작품 세계

입력
2003.10.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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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종달새처럼 날아올라 매처럼 쳐다보는 상상력을 갖고 있는 작가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나딘 고디머는 200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존 맥스웰 쿳시(63)를 가리켜 이렇게 말했다. 최근 10여년 간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지명돼 온 쿳시는 노벨 문학상을 제외한 다른 굵직한 문학상은 거의 다 탔을 정도로 뛰어난 문학성을 일찌감치 인정 받아 온 작가다. 작가일 뿐만 아니라 영문학자, 수학자, 컴퓨터 프로그래머이기도 한 그는 '마이클 K의 삶과 세월', '추락'으로 한 작가에게 두 번 상을 주지 않는다는 전례를 깨고 영국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부커상을 두 차례 받았다.그는 철저한 은둔자로도 유명하다. 두 차례에 걸친 부커상 시상식에 불참했으며, 2일 노벨문학상 발표 뒤에도 작가와 직접 연락이 닿지 않아 스웨덴 한림원은 수상 소식을 직접 알리지 못했다. 쿳시가 연구원으로 있는 호주 애덜레이드대 대변인은 "쿳시가 시카고대 학술회의에 참석하고 있다"고 밝혔다.

쿳시는 식민주의와 제국주의 문제에 천착해 온 작가다. 그는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대한 알레고리를 뛰어나게 묘사했으며, 그것은 물론 그가 남아프리카 태생이라는 배경에서 나왔다. 작가는 소설에서 억압의 대상인 야만인이 존재하지 않으면 제국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제국은 타자가 있고서야 정의될 수 있는 것임을 주장한다. 쿳시가 고발하는 것은 살아 남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상대방을 타자화하는 제국의 행태이다. 쿳시는 소설에서 제국주의자와 원주민, 가해자와 피해자, 식민주의자와 피식민주의자, 백과 흑 등의 이분법에 의존하지 않고 체제에 순응하기를 거부하는 진보적 인물을 내세운다. 체제 순응·유지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안으로부터 폭로함과 동시에, 그것에 대한 자신의 공모성을 부각하는 것이 그의 소설의 일관된 작법이다. 그것은 폭력적 식민주의자들의 실체와 허상을 드러내는 기능을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폭력적 정권이나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면서도 자신 또한 지배자의 이데올로기에 암암리에 물들어 있음을 드러내 보인다는 점이다. 왜 소설의 주인공이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을 파고들면서 때로는 자멸에 가까운 고백을 하는지, 작가가 그와 같은 내러티브에 매달리면서 자신의 고뇌를 투영하는지에 대한 이유이기도 하다.

쿳시는 '더스크랜즈' '나라의 심장부에서' '페테르부르크의 대가' '야만인을 기다리며' '철기시대' 등을 발표하면서 탄탄한 문학적 명성을 다져왔다. 그의 많은 소설에서 남아공이라는 공간이 구체적으로 묘사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식민주의자와 피식민주의자 사이의 폭력과 억압의 사슬은 특정한 시대와 장소에 국한된 게 아니라 보편적인 것이라는 그의 인식 때문이다. 남아공의 식민주의와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은 나름으로는 특정한 공간에서 행해진 것이지만, 그러한 폭력은 남아공만이 아니라 세계의 어느 곳에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의미다.

그는 "인간은 정의와 진실에 대한 개념을 갖고 태어났기 때문에 자신의 이익에 부합되지 않는 행위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자신의 글쓰기가 윤리적인 것임을 가리키는 말이다. '인류의 평화에 큰 공헌을 한 사람에게 수여된다'는 취지로 제정된 노벨 문학상은 그 상의 의미에 합당한 수상자를 찾은 셈이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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