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의 과장을 덧붙여 말하면, 이젠 한국 사극 영화의 새 장이 열리지 않을까, 싶(었)다. 또 하나의 기대작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감독 정재용)를 보며 ‘막연히’ 든 생각이었다. 18세기 후반 정조 시대를 배경으로, 지독히도 선정적인 음모와 욕망의 이야기를 적나라하면서도 격조 있게 보여주는 수작. 그만큼 개인적 만족도가 큰 것이다.배용준 전도연 이미숙 등 주연진 개개인의 연기력이나 연기 앙상블에 대해선 사족일 듯해 그냥 넘어가련다. 스크린 데뷔전을 치른 ‘꽃미남’ 배용준이 카사노바도 혀를 내두를 냉혈호색 바람둥이 역을 더할 나위 없이 멋지게 소화해냈다는 정도만 언급하자.
남다른 만족은 무엇보다 의상이 돋보일 수 밖에 없는 시대극, 즉 ‘코스튬 드라마’로서의 시각적 완성도에서 비롯된다. 정색하고 찾자면 옥에 티가 없을 리 없겠으나, 거의 흠잡을 데가 없다. 민병천 감독의 ‘내츄럴 시티’ 못지않은 볼거리로 즐비하다. 특히 CG(컴퓨터 그래픽)가 아니라면 구현 불가능했을 당시 한양의 모습은 오랜 동안 잊혀지지 않을 법도 하다.
그보다 더 큰 만족은 그러나 일정한 거리두기와 강력한 몰입을 동시에 가능케 하는 드라마의 호흡에서 발생한다. 단적으로 시대극이란 전제에서 기인하는 낯설음을 출중한 극적 리듬으로 넉넉히 상쇄시키는 것이다. 그로써 대중영화다운 내러티브적, 정서적 재미와 작가영화다운 지적 성찰을 함께 선사한다. 스티븐 프리어즈의 걸작 시대극 ‘위험한 관계’(1988)와 마찬가지로.
‘음양사’(감독 타키다 요지로)는 ‘스캔들’과 비교해가며 보면 혹할 일본산 사극 영화다. 음양사(온묘지)는 일본 헤이안 시대(794-1192)에 풍수지리설과 음양역학에 주술 등을 접목시킨 음양도(온묘도)로써 조정에 시중들던 일종의 주술사들을 가리키는 용어. 영화는 일본 최대 음양사로 알려진 실존 인물 아베노 세이메이(노무라 만사이 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시대극이자 SF 블록버스터 판타지물인 것이다.
엄연한 역사와 지독한 환상이 결합, 탄생한 영화답게 ‘음양사’에는 이 지상과 천상의 요소들이 적절하게 배합되어 있어 영화 보기의 재미를 북돋아준다. 당장 이 영화의 CG.SFx(특수 효과)를 ‘스캔들’의 그것들과 견주며 보는 맛이 여간 크지 않을 것이다. 인물들에게서 드러나는 두 나라의 다른, 너무나도 다른 정서를 음미하는 맛도 아주 진할 터이다. 중국 무협 영화들과는 또 다른 감흥을 안겨주는 액션 연출도 그럴 테고.
액션 영화 팬들이 매우 반겨 할 선물은 하지만 ‘이퀼리브리엄’ 이다. 워낙 수준 차가 나는 터라 “‘매트릭스’는 잊어라!”라는 광고 문구가 과장이요 허풍으로 비치긴 하지만, 배경이 미래 사회라든가 주인공이 검은 제복을 입고 환상적 무술에 능하다든가 하는 점에서는 분명 비교 가능한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오로지 액션에만 집중해 본다면 꽤 흥미진진할 성도 싶다. 마치 칼을 쓰듯 총격전을 펼치는 액션 장면들은 전에 보지 못했던 스펙터클이니까….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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