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식이냐 유럽식이냐를 놓고 3년 넘게 끌어온 디지털TV(DTV) 전송방식 논란이 중대 기로에 섰다. 이미 미국식으로 결정돼 DTV 전환일정이 추진되고 있는 이상 재검토는 허용할 수 없다는 정보통신부 주장에 맞서, 전송방식 문제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유럽식 진영의 주장이 각계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정통부 주관으로 미국식 전송방식을 채택해 2001년부터 부분적으로 DTV 방송을 실시하고 있지만, 이해 당사자가 모두 참여한 객관적 비교시험은 한번도 실시하지 않은 채 전송방식을 결정해 논란을 키워왔다.확산되는 전송방식 변경 요구
방송위원회는 1일 정보통신부에 'KBS가 주관하는 양 방식의 비교시험을 허가하고 공정한 검증을 위해 정통부가 비교시험에 참가하라'는 권고 공문을 보냈다. 방송위는 7일 열리는 전체회의 때까지 정통부가 이 권고에 대해 아무런 입장을 표명하지 않을 경우 DTV 전환일정의 잠정 중단을 결정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 동안 전송방식 논란과 관련, 침묵해 온 방송위가 양 방식에 대한 비교시험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굳힘에 따라 유럽식으로의 전환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한층 힘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방송계에서도 MBC를 중심으로 한 유럽식 전환 주장이 KBS, EBS로 확산되면서 미국식을 고수하는 정통부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미국식을 지지했던 KBS는 최근 두 방식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으로 돌아 섰다. KBS는 지난달 20일 비교시험 추진위원회 구성안을 확정하고 방송위, 정통부, 방송사, 가전업계 등에 참가를 제안했으며 EBS도 방송위에 전환일정을 잠정 중단시킬 것을 요구한 상태다.
엇갈리는 기술 및 정책 평가
그러나 미국식과 유럽식 중 어느 쪽이 기술적으로 우수하며, 정책적으로 옳은 선택이냐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팽팽히 맞서 있다. 지난달 30일 방송위 주관으로 열린 전송방식 청문회에서도 논란은 되풀이됐다.
언론노조는 미국식 전송방식(8-VSB)이 기본적으로 이동수신이 어려운 점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지상파 방송사가 디지털 방송통신 융합시대에 막대한 수요가 예상되는 이동수신 시장을 포기하고, 정통부가 대안으로 내놓은 통신사업자 주도의 위성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에 시장을 내줄 경우 보편적 공공서비스라는 지상파 방송의 기능이 심각한 타격을 받으리란 주장이다.
반면 정통부는 유럽식(COFDM) 역시 HD화질과 이동수신을 동시에 구현할 수는 없으며 특히 방식변경으로 DTV 전환이 늦어지면 부산, 울산, 제주 등 한·일 인접지역에서 일본에 디지털 주파수를 선점 당해 애초 목표인 DTV 전환 자체가 어려워진다고 주장했다.
양측은 수신율, 방식 변경시 경제적 손실, 가전산업 경쟁력 등을 놓고도 상반된 주장을 내놓았다. 석원혁 방송기술인연합회 정책실장은 "정통부는 6개월 간 네 차례의 회의와 한 차례의 공청회로 전송방식을 졸속으로 결정했다"며 "유럽식은 난시청을 해소하고 이동수신이 가능하며 보편적 서비스 쪽으로 가는 방통융합 시대의 지상파 모델에 적합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류필계 정통부 전파방송관리국장은 "디지털 기술의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단순히 기술로만 정책을 세울 수는 없다"며 "CDMA 방식이나 IMT 2000 논란에서처럼 정부의 일관된 정책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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