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이 직업인지라 긴 여행을 떠나려면 준비할 것이 많다. 특히 글 쓰는 데 필요한 게 한 짐이다. 휴대용 컴퓨터는 필수다. 몸체만은 가볍고 산뜻하다. 한 손에 잡히는 게, 기분이 그만이다. 저걸 펼쳐놓고 타닥타닥 글을 써 내려가는 내 모습이 저절로 떠오른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다. 전원 연결코드를 넣어야 한다. 긴 선은 꼭 어딘가가 꼬여있고 어댑터는 꽤 무겁다. 마우스도 필요하다. 랜에 연결해야 할 때를 대비해 그 선도 따로 챙겨야 한다. 역시 꼬여있다. 혹시 컴퓨터가 말썽을 일으킬 때를 대비하여 운영체제 CD도 챙긴다.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송고하거나 저장할 때를 대비하여 카드리더기도 빠트리면 안된다. 키보드도 넣을까? 그건 포기한다. 이 모든 것들을 가방에 쑤셔넣으면 그것만으로도 어느새 엄청난 짐이 된다. 그리곤 여행 내내 그것을 연결할 곳을 찾아 헤맨다. 그걸 다 하면 피곤해서 잔다.이순신 얘기를 쓴 내 선배 작가는 여행을 떠날 때 연필 몇 자루와 공책을 가지고 떠나 민박집에서 밥상을 빌려 글을 쓴다. 연필과 공책이 떨어지면 동네에서 사고, 원고를 완성하면 출판사에 보내 입력하게 한다. 전 세계의 문구점과 우체국이 그의 편이다. 내 편은 오직 시애틀의 갑부 빌 게이츠 뿐인데 별로 그에게 도움 받은 바 없다.
/소설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