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지평선]울스톤크래프트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지평선]울스톤크래프트

입력
2003.10.02 00:00
0 0

영국의 문호 바이런은 폭풍우가 몰아치는 저녁, 시인 셸리 부부의 집을 방문했다. 그들은 서로 유령 이야기를 들려준 후, 각자 괴기소설을 쓰기로 약속했다. 이날 밤 셸리 부인 메리는 악몽을 꿨다. <무시무시한 남자의 환영이 나타났고, 어떤 강력한 기계에 의해 그것이 깨어나서 괴롭게 꿈틀대는 것을 보았다.> 전율과 공포의 괴기소설 '프랑켄슈타인'은 이 악몽에서 탄생했다. 메리는 19세기 초의 과학지식과 고대신화를 독특한 방식으로 연결시킨 천재였다. 소설에서 주인공은 성(性)을 통하지 않고 창조를 이룬다. 애석하게도 피조물은 괴물이었다. 메리에게 성은 위협이자 죽음을 의미했다. 어머니는 자기를 낳다가 죽었고, 가장 가까운 친구 역시 출산과정에 사망했다.■ 메리의 어머니 메리 울스톤크래프트 또한 천재 철학자였다. 그러나 역사나 철학사는 그를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그의 주장은 당시 계몽주의자, 지식인 등이 듣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그는 남성 평론가들로부터 '철학하는 악마' '여자의 모습을 한 하이에나' 등으로 불리었다. 그의 글은 '양도할 수 없는 인간의 권리' 라는 자유주의적 주장을 여성에게 적용한 것이었다. '정신에는 성별이 없다' 고 요약되는 저서 '여성권의 옹호' 는 여성운동의 독립선언서라고 볼 수 있다. 그가 딸을 낳다가 타계한 것이 38세 때인 1797년이었다. 딸이 메리라는 이름을 물려받았다.

■ '이름'과 관련 있는 호주제 폐지는 우리 여성계의 40년 숙원이다. 법무부가 호주제 폐지 개정안을 입법 예고한 것은 잘 한 일이다. 개정안은 이달 중 국무회의의 확정절차를 거쳐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개정 내용은 호주개념을 없애고, 필요한 경우 이·재혼 가정의 자녀가 가정법원의 결정에 따라 친아버지의 성 대신 새 아버지 또는 어머니의 성으로 바꿀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부가(父家) 입적, 남성위주의 호주승계 순위 등을 규정하고 있는 호주제는 여성의 자존과 평등을 침해하는 구시대적 유산이다.

■ 일제의 지배수단으로 도입된 이 제도는 북한과 일본에서도 폐지된 지 오래다. 그러나 폐지반대의 목소리도 여전히 만만치 않다. 대표적 주장이 '폐지하면 우리가 금수(禽獸) 차원으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호주제 덕에 우리만 문화민족이라는 강변이다. '폐지논의는 선거를 겨냥한 표몰이 전략이며 북한 가족법과 같게 고치자는 것' 이라는 억지도 있으니 딱하다. 한국 여성은 지난 30년간 평균신장이 4cm 커졌지만, 여성권한 척도는 세계 66국 중 61위라고 한다.

/박래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