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 목숨이었다. 함께 너와 함께 숨쉬며 살고 싶었는데. 너를 마음에 품은 후로 나는 한번도 깊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MBC 드라마 '다모(茶母)'를 향한 다모 폐인들의 일편단심은 극중 장성백이 남긴 마지막 대사처럼 절절하기 짝이 없다. 드라마는 지난달 9일 종영했지만 이들은 온·오프라인에서 마치 종사관을 따르는 좌포청 대원들처럼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이른바 '다모 후폭풍'이 무서운 기세로 몰아치고 있다.
'다모' 전용 인터넷 검색 엔진 '다모우저'에 가 보면 그런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한성좌포청신보, 우포청다모일지, 다모도감, 다모일보, 다모 연구…. '다모'판 인터넷 신문만 해도 열 개가 훌쩍 넘는다. 그뿐이 아니다. 하지원, 이서진, 김민준은 물론 원해 역의 권오중, 마축지 역의 이문식, 숙종 역의 선우재덕에서 이재규 PD까지 팬 클럽이 결성됐다.
MBC '다모' 게시판에는 종영 이후에도 하루에 수 백건이 넘는 글이 올라온다. 아침에 '등청'을 알렸다가 저녁에 '퇴청'을 알리는 다모 폐인이 수두룩하다. 일반인들 사이에는 여전히 '∼하오' '∼했소' 등의 이른바 '다모체' 어법이 유행하고 있다. MBC넷은 지난달 24일부터 월∼금요일 밤 10시40분에 '다모'를 긴급 편성했다. '다모'를 보지 못한 시청자들의 문의가 하루 100여 통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온라인상의 다모 폐인 결집은 오프라인에서의 만남으로 이어지고 있다. 다모 폐인들은 10월4일 오후 6시30분 서울 힐튼 호텔 컨벤션 센터에서 대규모 정기모임을 가질 예정이다. 하지원, 권민중, 권오중 등 출연진과 연출자 이재규 PD와 조연출 김대진 PD 등 제작진이 모두 참석할 이번 행사는 네티즌들이 기획하고 진행하는 행사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다모 폐인들의 활동은 온·오프라인 모임에 그치지 않는다. 수많은 폐인들이 드라마 '다모'의 문화적 가치를 알리는 전위대로서 활동하고 있다. 자칭 사이비 다모 폐인이라는 장미리(32·여)씨는 '다모 폐인의 추억'이란 책을 자신이 몸담고 있는 출판사에서 10월 중순에 펴낼 예정이다. 책에는 MBC 게시판에 올라온 100만 건의 글 가운데 다모 폐인들이 지난 두 달간 게시판에서 겪은 추억이 실린다.
한편 신진 영화평론가인 이은화씨는 '다모' 제작 과정과 네티즌들의 글을 담은 책을 집필하고 있다. "예고 방송을 본 순간부터 한눈에 매료됐다"는 이씨는 자신의 책을 통해 '다모'의 탄생 배경, 제작 과정 등 전 과정을 분석할 계획이다.
'다모'의 이재규 PD는 11월13일 추계예술 대학 문화산업 대학원에서 드라마의 성공 요인과 관련해 특강할 예정이다. 추계예대 박물관경영학과 이보아(39) 교수는 "'다모'가 하나의 드라마에 대한 팬덤 현상을 넘어 문화 트렌드로 자리잡아 가고 있어 특강을 부탁하게 됐다"며 자신도 '다모' 최종회를 여섯 번이나 본 폐인이라고 고백했다.
이 교수는 드라마 종영 이후에도 열기가 식지 않고 있는 데 대해 "다모 폐인들은 유사한 문화적 욕구를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이를 서로 공유하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작가 정형수씨는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을 읽다 보면 내 의도를 100% 읽은 것도 있고 때로는 그 수준을 넘는 것도 있다"고 털어 놓았다. 그는 "작품을 새롭게 해석하고 변형시키는 네티즌들을 보면서 한 수 배워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다모를 너무나 좋아하는 나머지 식음전폐 등 일상적 생활이 불가능 해진 사람들. 원래 폐할 '廢'자를 쓰는 것이 보통이나, 이들의 '다모(茶母)'는 워낙 사랑의 개념이 지배적이어서 사랑할 '嬖'자를 사용한다.' '다모 폐인'(多母嬖人)에 대한 정의다. 그러나 다모 폐인에 대한 이 정의는 '인터넷 시대에 등장한 새로운 문화 창조자를 일컫기도 한다'로 조만간 바뀔지도 모른다.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 다모 인터넷 카페 시삽 백은순씨 ●
"삭탈관직 당하게 생겼다니까요." 과연 다모 폐인답다. 20만 명이 넘는 회원을 거느린 인터넷 다음카페 'MBC 다모'의 시삽 백은순(26)씨. 그는 광고 시각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현 직장에서 '잘리게 생겼다'는 말을 삭탈관직으로 표현했다. 카페 오프라인 모임 준비하랴, 신문·방송사와 인터뷰하랴, 회사 일에 다소 소홀했던 탓에 "책상을 빼게 생겼다"고 엄살을 부리면서도 그는 인터뷰 내내 즐거운 표정이었다.
'뜨는 다모 위에 나는 다모 폐인 있다'는 말을 그는 요즘 실감하고 있다. 9일 '다모' 종영을 계기로 회원수가 줄어 들면 마니아 위주의 클럽으로 꾸려 가려고 '독한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종영 후 일주일도 안돼 회원이 2만 명이나 오히려 늘었다.
"빼어난 영상미와 살아있는 캐릭터, 한 편의 시 같은 대사가 '다모' 열풍을 몰고 왔죠. 거기에 네티즌의 열광이 더해져 바람을 일으킨 거죠." 폐인 중의 폐인 답게 그의 '다모 예찬론'은 끝이 없다.
"폐인이라고 해서 특정한 사람만 모인 것은 아니에요. 다섯 명의 운영위원 가운데는 애를 둘이나 낳은 삼십대 후반의 아줌마도 있어요. 호주 유학생도 있고요." 그는 다모 폐인으로 불리는 걸 영광스럽게 여기는 듯했다. 10월 중의 '다모' DVD 출시를 기념하기 위해 대규모 시사회를 준비하고 있다는 그의 입에게서 금세 '이렇게 만나니 얼마냐 좋으나'는 극중 대사가 불쑥 튀어 나올 것 같았다.
/김대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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