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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근의원이 공개한 "송두율 행적"/ "91년 김일성 만난후 후보위원 선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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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근의원이 공개한 "송두율 행적"/ "91년 김일성 만난후 후보위원 선임"

입력
2003.10.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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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정보위의 한나라당 간사인 정형근 의원은 1일 국정원 국감에서 국정원이 보고한 송두율씨 수사내용을 기자들에게 브리핑했다. 정 의원은 정보위를 대신해서 국정원 보고내용을 토대로 송씨의 친북 행적을 상세히 공개했다.정 의원에 따르면 송씨는 1973년 9월부터 올해 3월까지 18차례 입북했고, 북측으로부터 총 15만 달러 가량을 받았다. 송씨는 독일을 거점으로 활동하던 유학생 출신 북한 공작책 이모(71)씨의 주선으로 73년 9월 모스크바를 거쳐 최초로 입북, 초대소에서 2주일간 주체사상 학습 및 공작원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송씨는 당시 노동당에 입당했고 활동비로 2,000달러를 받았다. 송씨는 이어 80년대 들어 국내 간행물을 통해 "북한의 입장에서 북한을 이해하자"는 '내재적 접근론'을 제시, 친북 운동권 이론의 토대를 마련해줬다는 것이다.

이후 86년 11월 재독 유학생 간첩인 오길남씨가 유럽에서 망명신청을 했을 땐 송씨는 오씨에게 "내가 오형이라면 북한에 다시 들어가겠다. 우리가 기댈 언덕은 북한밖에 없다"고 재입북을 권유했다. 정 의원은 "국정원 수사과정에서 송씨가 오길남씨와 대질신문을 한 뒤 이 같은 사실을 시인했다"고 전했다.

송씨는 이어 88년 9월 입북,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소속이던 전금철 등으로부터 "재독 유학생을 포섭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1,000∼2,000달러를 받았다. 송씨는 또 88년의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올림픽을 열 수 없는 나라"라는 내용의, 한국을 비판하는 책을 내기도 했다. 이런 공로를 인정 받아 91년 5월 독일의 북한 이익대표부로부터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 된다'는 통보를 받게 됐고, 그 무렵 북한의 사회과학원 초청으로 입북, 김일성을 면담한 뒤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 됐다. 송씨는 이후 95년까지 독일 거점의 북한 공작원으로부터 연구비 명목으로 매년 2만∼3만 달러를 수수했고, 96년 8월 아버지가 사망했을 때는 김정일의 친필지시로 1,500마르크의 위로금을 받았다.

94년 7월8일 김일성 사망 당시엔 독일 거점 북한 공작원에게서 "장례위원으로 선정됐다"는 통보를 받고 입북했다. 정 의원은 "국정원이 김일성을 조문하면서 송씨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찍힌 사진을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송씨는 이외에도 95년 7월부터 김용순 등의 지시로 중국 베이징과 평양 등에서 6회에 걸쳐 남북 및 해외학자 통일학술회의를 주도했다. 정 의원은 "송씨가 '통일학술회의는 남북한 상층부의 통일전선을 구축한다는 목적이 있었다'는 자백을 했다"고 전했다.

송씨는 또 조국통일 범민족연합 유럽본부에 가입해 활동하면서 북한의 노동당 창건일 등 북한의 기념일마다 "장군님 만수무강을 빈다"는 내용의 '충성맹세문'을 10여 차례 작성, 북한에 전달한 사실도 드러났다고 정 의원은 밝혔다. 국정원은 수사과정에서 송씨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묘향산 별장에서 있었던 김일성과 송씨의 오찬 사진, 김일성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 등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진동기자 jayd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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