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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 "폐컴"은 죽지 않는다 다만 재활용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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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 "폐컴"은 죽지 않는다 다만 재활용될 뿐이다

입력
2003.10.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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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형들 눈치를 안보고 마음껏 게임을 할 수 있게 되어 너무 기뻐요." 서울 관악구 봉천 2동 김한승(7·가명)군에게 30일은 생일 다음으로 즐거운 날이 됐다. 이날 한국자활후견기관협회(자활협)로부터 펜티엄III급 컴퓨터를 기증 받았기 때문. 3형제가 한 방에서 한 컴퓨터를 썼기 때문에 평소 좋아하는 '크레이지 아케이드' 게임을 할 때마다 형들은 숙제를 한다며 자신을 쫓아냈다. 자활협은 이날 김군 가정을 비롯해 중풍에 걸린 홀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김정은(14·가명·성현중1)양에게 펜티엄IV급 컴퓨터를 기증하는 등 봉천동의 저소득계층 2가구에게 컴퓨터를 선물했다. 2가구는 한국일보가 자활협, 푸른경기21, 쓰레기문제해결을 위한 시민협의회(쓰시협)와 공동으로 펼치고 있는 '친구에게 컴퓨터 보내기 운동' 의 첫 수혜자가 됐다.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있는 성보중학교에게도 이날은 의미가 깊은 날. 본관 4층의 역사교육실과 2층의 자재실에 뽀얗게 먼지가 내려앉은 채로 보관돼있던 폐컴퓨터들이 주인을 만났기 때문이다.

이날 성보중이 자활협에 인계한 물품은 컴퓨터 본체 63대(486급 20대, 펜티엄I급 35대, 펜티업 II급 8대)와 모니터 63대, 프린터 8대. 자활협은 대신 성보중에 재조립된 펜티엄 IV급 컴퓨터 1대를 기증했다.

1990년대 초반부터 정보화 교육에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였던 이 학교 오번영(57)교장은 최근 폐컴퓨터의 처리 문제로 속앓이를 해왔다. 올해 성보중이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시범학교로 지정돼 교육청으로부터 신기종 컴퓨터 20대를 받은 대신 기존 컴퓨터 20여대는 창고행 신세를 면할 수 없었기 때문.

오교장은 창고에 쌓인 컴퓨터들을 각종 사회복지 단체에 기증할까 생각도 했지만 국가재산인 컴퓨터를 임의로 불용(不用) 처분할 수 없는 점이 걸림돌이 됐다. 교육청에 문의를 해도 '컴퓨터는 고가(高價)인 만큼 함부로 불용처분하지 말고 최대한 활용하라'고 할 뿐 처리 및 폐기에 관한 지침은 내려오지 않았다. 다행히 이 운동의 시작을 계기로 지난 19일 서울시 교육청(교육감 유인종)이 '노후 컴퓨터 활용 및 처리 안내 지침'을 내려 해결책을 찾았다.

오교장은 "교내의 폐품을 처리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폐컴퓨터를 친환경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이유를 학생들에게 잘 알릴 수 있다면 이 운동의 의의가 더 클 것" 이라며 "학교 컴퓨터 뿐 아니라 학생 개인들이 집에 보관만 하고 있는 노후 컴퓨터 기증도 권유할 예정"이라고 적극 동참을 다짐했다.

이날 63대의 노후 컴퓨터를 기증한 성보중을 비롯, 지난 주 서울 강남 학동초교(본체 53대, 모니터 19대 등)도 자활협에 컴퓨터를 기증했고 서울 광진구의 대원고(본체·모니터 23대), 서울 노원구 온곡중(본체 39대, 모니터 7대 등), 서울 동작구 동작초교(모니터 25대) 등이 기증 계획을 밝히는 등 컴퓨터 보내기 운동이 본궤도에 오르고있다.

이 운동은 방치된 컴퓨터를 수거해 환경부가 지정한 친환경적 컴퓨터 중간처리업체에 판매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재조립한 컴퓨터나 컴퓨터 판매대금으로 구입한 새 컴퓨터는 저소득 계층에게 기증되지만 최저생계비 이하인 영세 가정 청소년들이 우선순위를 갖는다. 자활협의 컴퓨터 수거인력 역시 저소득계층으로 이 운동은 '저소득 계층 빈곤 탈출, 영세 가정 청소년 정보화 소외 해소, 폐 컴퓨터의 친환경적 처리와 활용' 등 일석 삼조의 효과가 있다.

자활협은 10일께 홈페이지(www.friendlove.or.kr)를 개설하고 서울과 경기도 초중등 학교에 '폐 컴퓨터의 친환경적 처리와 활용'을 주제로 한 홍보비디오를 보급할 예정이다. 컴퓨터 기증에는 각급 학교는 물론 개인, 기업체도 동참이 가능하다. (080)057―7979 , (031)416―9487

■안승문 서울시 교육위원

" '친구에게 컴퓨터 보내기 운동'이 확산되어 각 학교마다 노후 컴퓨터 재활용의 중요성을 공감했으면 좋겠습니다."

교단정보화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안승문(43·사진) 서울시 교육위원은 "교육관료들은 새 컴퓨터의 구입에 많은 예산을 쓰는 반면 폐 컴퓨터의 재활용이나 소프트웨어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다"고 말문을 열었다.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등의 시행 등으로 올해 컴퓨터 구입예산은 500억원에 달했지만 폐 컴퓨터의 재활용이나 소프트웨어 구입(예산 30억원) 등에 대한 지원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안 위원의 주요 관심사는 하드웨어 보급에 병행하는 내실있는 정보화. 그러나 '친구에게 컴퓨터 보내기 운동'을 통해 폐컴퓨터 재활용의 중요성도 실감하게 됐다. 1997, 98년부터 진행된 '1 교사 1 PC' '1 교실 1 PC' 운동의 확산으로 각급 학교에 컴퓨터 보급은 성공적으로 이뤄졌지만 보급된 지 4∼5년이 지나 교체시기에 도달했기 때문. 초기 주저하던 교육청 간부들도 안 위원의 설득에 공감, 최근 서울시내 1,200개 학교에 공문을 보내 '친구에게 컴퓨터 보내기 운동'의 동참을 권하며 적극적 지지자로 나섰다.

전교조 해직 교사 출신으로 지난 해 서울시 교육위원이 된 안위원은 "친구에게 컴퓨터 보내기 운동이 컴퓨터의 대량 보급 위주로 진행됐던 교육전산화 정책을 점검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을 맺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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