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콘(신보수주의자)이라는 말이 몇 해 전부터 유행을 타고 있다. 조지 부시 2세가 이끄는 미국 행정부 안팎의 매파 관료들과 지식인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네오(neo: 新)든 팔레오(paleo: 舊)든, 이들을 콘서버티브(보수주의자)라고 부르는 것은 언어의 오용이다. 이들을 보수주의자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은, 이들의 관심이 지켜 간직하는 데 있지 않고 부수어 제거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이들은 윌슨과 루스벨트와 유엔 헌장에 연원이 닿아있는 다원적 국제질서를 때려부수었다. 그들은 '우방'에게 '비용의 분담'이나 '책임의 분담'을 요구하면서도, '결정의 분담'을 제안하는 법은 결코 없다. 전통적 다원주의 질서를 뒤엎고 섬뜩하게 치켜든 이 일방주의를 통해 이들은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을 제거했고,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을 제거했다. 이들이 제거한 것이 이교도 정권과 이교도적 가치만은 아니다. 이들은 이른바 '애국자법'이라는 것을 통해서, 양심의 자유와 적절한 법적 절차라는 미국 헌법의 본질적 가치를 짓밟았다. 그러니 이런 터미네이터 정권에 어떻게 보수주의라는, 제 나름의 매력을 발하는 이름을 헌정할 수 있겠는가? 부시 주니어 정권을 적절히 기술할 이름은 '반동적 근본주의' 정도가 될 터이다.
문제는, 이 반동적 근본주의자들이 이끄는 나라가 예전의 슈퍼파워가 아니라는 데 있다. 미국은, 프랑스의 전 외무 장관 위베르 베드린의 용어를 훔쳐 오자면, 하이퍼(hyper: 과대)파워다. 하이퍼파워를 냉전 시대의 슈퍼파워와 구별하는 가장 큰 특징은 그 유일성이다. 미국이라는 하이퍼파워에 견주면, 러시아 같은 옛 슈퍼파워조차도 하이포(hypo: 하위)파워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은 은유로서가 아니라 실제로 제국적 공화국이, 제국의 메트로폴리스가 되었다. 결국 지금의 이 천하대란을 배태한 것은 2000년 부시 주니어의 집권이나 그 이듬해 9월의 끔찍한 테러 사건이 아니라, 1989년의 베를린 장벽 붕괴인 셈이다. 제동을 걸만한 맞수가 사라지자 미국은 반동적 파괴·확장 욕망에 급격히 노출되었다. 그리고 그 욕망은 빌 클린턴이라는 솜씨 좋은 디자이너 덕분에 8년간 비교적 단정한 옷을 걸치고 있다가, 이른바 '네오콘'에 의해 알몸을 드러냈다.
그렇다는 것은 또 지금의 을씨년스러운 세계 질서(차라리 세계 무질서)가 도널드 럼스펠드나 폴 월포위츠나 리처드 펄 같은 부시 2세 주변의 터미네이터들 책임만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더 큰 책임은 무지와 무책임과 자만심 속에서 이들을 용인하고 이들에게 환호한 미국 시민들에게 있을 터이다. 그리고 미국이라는 하이퍼파워의 변덕을 적절히 제어하지 못한 다수의 하이포파워 정부와 시민 사회도 그 책임의 일단을 나눠 져야 할 것이다.
지금 미국 정부를 제어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미국 유권자들에게 있다. 인도 작가 아룬다티 로이가 적절히 지적했듯, 미국은 결코 위대한 나라가 아니지만 미국인은 위대한 국민이 될 수 있다. 역사가 지금 그들에게 위대해질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미국인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건국의 아버지들이 간직했던 이념의 거처는 제국이 아니라 자유였다는 것을 기억해내고, 제국의 무차별적 확장 욕망을 막아야 한다.
미국인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미국인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구 문명 전체를 위해서, 위대해지려는 미국 시민들의 노력을, 제국의 확장을 멈추려는 그들의 노력을 도울 책임이 있다. 제국의 경영에 너무 많은 비용이 든다고 판단될 때만, 제국은 그 확장을 멈추고 물러설 것이다. 이라크에 전투병을 보내는 것은, 스스로 결정하지도 않은 전쟁에 대한 책임을 어리석게 나눠지는 짓일 뿐 아니라, 제국 경영의 비용을 줄여서 제국의 확장 욕망을 북돋우는 짓이다.
고 종 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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