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마르탱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책이 나올 때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저자가 훨씬 훌륭하게 해버린 듯 해서 슬펐습니다. 그러다가 하루는 흥분해서 자기가 좋아하는 책 얘기를 친구들에게 했는데, 의외로 자기와 같은 것을 발견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윽고 마르탱은 문예비평가가 되었습니다."C.E.마니의 평론집 '엠페도클레스의 짚신'에 나오는 얘기다. 신수정(38)씨의 첫 평론집 '푸줏간에 걸린 고기'(문학동네 발행)의 책머리에 놓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마르탱'의 자리에 그 글을 옮긴 저자의 이름을 놓는다면 이렇게 다시 쓰여질 수 있다. "신수정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대학생활을 지배했던 80년대의 거대 담론과 자신과의 괴리에 회의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어떤 작가들의 책에서 사람이 벌레고 똥이고 고깃덩어리라는 것을 발견하고, 그 사실에 매혹됐습니다. 그는 문예비평가가 되었습니다." 1993년에 처음 평론을 발표했으니 10년 만에 묶어내는 책이다. 출간이 늦어진 이유를 물었더니 "늘 미흡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문학을 바라보는 입장을 선명하게 밝힐 만한 글을 모으고 싶었다"는 대답이었다.
'푸줏간에 걸린 고기'라는 자극적 제목은 그가 행한 비평 활동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는 90년대 들어 평론가의 이름을 내걸었으며 푸줏간에 걸린 날고기처럼 그 작품에 신선한 붉은 핏기가 배어 있는 작가를 찾아내는 데 집중했다. '철부지 어린아이 같되 본능적으로 어른의 위선을 넘어서는' 배수아에, '지형지물이 적절하게 배치된 야전장에서 전쟁놀이를 벌이는 개구쟁이' 백민석 같은, 지금은 문명(文名)을 얻은 작가들의 초기 작품부터 따뜻하고 날카로운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90년대의 아이들'과 함께 자라왔다. 푸줏간에 걸린 고기는 훌륭한 요리가 될 수도, 그저 그렇거나 맛보지 않은 것만도 못한 음식이 될 수도, 혹은 부패하고, 거기 있었다는 것조차 잊혀질 수도 있다. 날것을 알아보고 의미를 부여하는 평론가의 작업은 그러므로 불안하고 유동적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작업이 기쁘다고 했다.
인류 전체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내면화하는 글쓰기가 있었다. 그때 인간은 한없이 성스러운 존재였다. 90년대 장정일은 소설 '아담이 눈뜰 때'에서 전시대의 인간의 신성을 완벽하게 배반했다. "나는 개다, 똥을 주워먹는다." 인간은 아무 곳에나 있다. 그것은 고깃덩어리다. 신수정씨의 비평은 '인간은 우주에서 지극히 미미한 존재'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평론집의 제목 '푸줏간에 걸린 고기'의 또 다른 의미이기도 하다.
최근 그의 관심은 여성성으로 옮아가고 있다. 그가 보기에 여성성은 모든 버려졌던 것들을 대표한다. "나 자신 '여성'이라는 조건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여성은 공식 문화에 등재되지 못한 '마이너리티'다. 그 속성은 전위적이기도 하고, 하위 장르이기도 하다. 모두 내 비평의 눈길이 던져졌던 것들이다. 나는 바깥쪽에 있는 존재의 이야기에 끌린다." 어쩌면 오늘날의 문학이 그러하다. 신수정씨는 그러나 지금 문학의 자리가 가장 문학적인 자리라고 말한다. "문학의 속성은 일찍이 주어진 것, 존재하는 것을 돌아보려는 움직임이다. 이제 문학 속 인간은 인류 전체의 경험에 기대지 않고도 자신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찾아낼 수 있게 됐다. 문학은 자신의 속성을 잘 지켜갈 수 있을 것이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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