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과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29, 30일 잇따라 이라크 추가 파병의 불가피성을 시사하거나 조기 결정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발언을 쏟아 내 정부 내 기류가 파병으로 기운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특히 그 동안 공개 발언에 신중을 기하던 당국자들이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입을 열었다는 점에서 정부가 파병을 염두에 두고 적극적 공론화에 나섰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도 29일 "한국이 (파병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각별한 기대감을 표시했다.
정부는 물론 공식적으로는 신중론을 견지하고 있다. 여론 동향, 유엔 결의안 채택 여부, 파병 비용 부담 등을 고려할 때 섣불리 결정할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파병부대 성격이나 규모 등 세부적 내용까지는 아직 조율이 이뤄진 것은 아닌 듯하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의 29일 한미동맹 강조 발언이 3월 1차 파병 당시의 "한미 동맹의 전략적·현실적 필요성을 고려해 파병을 결정했다"는 언급과 비슷하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또 노 대통령이 "한미 장병들은 지구촌 곳곳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다"고 말한 부분을 들어 전향적인 파병 의사를 보인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김진표 경제부총리가 비판 여론에도 불구하고 30일 "파병으로 결정되는 것이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은 것도 이미 부처간 상당한 교감이 이뤄졌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제 정부 내 핵심 쟁점은 파병 여부에서 파병 시기로 옮겨가는 모습이다. 신중론보다는 실기(失機)론이 더 힘을 받고 있는 것이다. 라종일 보좌관과 윤 장관이 "너무 늦어져서는 곤란하다고 본다"고 입을 모은 게 그런 맥락이다.
이 같은 정부의 움직임은 어차피 내주부터 이라크 파병과 관련한 뜨거운 논란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이 작용한 듯 하다. 6∼8일 서울에서 한미간 미래한미동맹 정책구상 회의가 열리는 데다 정부의 이라크 현지조사단도 3일 귀국해 내주 중 보고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다만 아직까지는 파병에 대한 반대급부가 국민을 설득시킬 만큼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 정부를 망설이게 하고 있다. 청와대의 한 핵심관계자는 "터키 파키스탄 등은 미국으로부터 파병비용 뿐 아니라 수십억 달러 규모의 원조까지 제안 받고 있다"면서 "파병 찬성여론이 50%를 넘을 때까지 결정을 내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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