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행을 결정한 것은 부끄러움이 이유였다. 여행을 취재하는 기자가 앙코르 유적지를 경험하지 못했다는 것은 분명 부끄러움이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 종교 예술의 정수, 아시아 민족의 힘…. 수많은 수식어가 있다. 그랬다. 아니, 그 정도의 수식어로는 부족할 정도이다. 여행을 마무리하면서 느끼는 것은 다름이 아니다. 찰나를 사는 인간 존재의 새털만도 못한 가벼움. 앙코르 유적지는 그것을 일깨워 주면서 빙그레 웃고 있었다.신들만이 사는 곳이라고 했다. 그래서 아무도 가까이 갈 수 없었다. 사람들이 발길을 끊으면서 500년이 넘도록 숲에 숨어 있었다. 그 세월에 열대의 밀림이 자랐다. 바깥에서는 존재조차 알 수 없었다. 캄보디아가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던 19세기말, 앙리 무어라는 프랑스의 생물학자가 풍문을 들었다. 캄보디아의 밀림을 뒤지기 시작했다. 빽빽한 숲 속에서 발견한 것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앙코르 유적지는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9세기에서 15세기까지 인도차이나 반도의 중앙부에 살고 있던 크메르인들은 반도를 지배했다. 물고기가 많아 배의 노를 젓기도 힘들었다는 톤레사프호수가 근거지였다. 금은보화가 많이 생산되는 지역이기도 하다. 크메르인들은 무력과 금력을 동원해 거대한 도시를 건설했다. 부귀영화가 오래 가면 균열이 생기는 법. 힘이 떨어지면서 크메르 왕국은 샴족(태국)의 공격을 받아 멸망했다. 이후 대도시는 계속 방치됐다.
어떻게 방치될 수 있었을까. 샴족이 도시의 모든 사람들을 학살했다는 설, 역병이 돌아 몰살했다는 설 등 추측은 많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이후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신성한 지역으로 인식됐고 세월이 흐르면서 잊혀졌다. 도시를 이루었던 목조건물은 모두 부식돼 없어졌다. 남은 것은 돌로 된 것 뿐이다. '남은 것'이라고 하지만 만만치 않다. 커다란 유적만 따져도 60여 개나 된다. 우리가 흔히 '앙코르 와트'라고 하는 것은 유적의 일부일 뿐이다. 모두 꼼꼼하게 돌아보려면 1년이 모자란다고 한다. 꼭 봐야 할 것만 볼수 밖에 없었다.
앙코르 와트는 앙코르 유적 중 가장 예술성이 높고 잘 보존된 것으로 꼽힌다. 불교와 힌두교의 사원이다. 크메르인들은 종교에 대해 관대했다. 사원을 지어놓고 다른 종교의 신들을 한꺼번에 모셨다. 불교의 기운이 왕성하면 부처님이 중앙에 들어앉고, 힌두교가 대세를 잡으면 힌두교의 신들이 대접을 받았다. 앙코르 와트는 그렇게 두 종교가 어우러져 있는 사원이다.
12세기에 만들어진 앙코르 와트는 현대의 건축 기술로도 풀 수 없는 수수께끼이다. 3만여 명의 장인이 30년에 걸쳐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사원의 가운데에 무게를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돌무더기로 중심을 잡고 그 위에 돌을 얹었다. 800년이 넘도록 지반이 흔들리지 않았다. 회랑의 돌기둥들은 들쭉날쭉이 아니다. 머리카락만큼도 오차가 없는 일직선으로 배열이 되어 있다. 세계의 유명한 건축가들이 현대의 기술로도 만들 수 없다고 한다.
단순한 돌덩어리가 아니다. 전체가 아름다운 조각품이다. 사원을 빙 두르고 있는 4개의 벽은 종교적 메시지를 전하는 조각으로 덮여 있다. 섬세하고 아름답다. 조금이라도 한눈을 팔면 굴러 떨어질 것 같은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2층, 3층으로 갈 수 있다. '종교로의 길은 고행'이라는 의미에서 일부러 가파르게 계단을 만들었다. 위로 올라도 조각품에 휩싸인다. 불교와 힌두교의 신들이 저마다의 자세를 자랑하며 미소를 짓는다.
앙코르 와트 옆으로 앙코르 톰이 펼쳐진다. 앙코르 톰은 왕궁이다. 5개의 문과 성벽으로 둘러싸인 정사각형의 왕궁이다. 중앙부에 위치한 바이욘 사원이 보존이 잘 되어 있다. 부처와 보살의 얼굴로 장식된 사원이다. 모두 미소를 품고 있다.
입술의 양 끝이 올라가 있는 아름다운 미소이다. '크메르의 미소'라고 한다. 원래 크메르인은 미소처럼 온화하다. 삶은 궁핍하지만 현실에 대해 크게 만족하면서 산다. 미소를 바라보고 있으면 이 곳이 200만 명 이상이 죽임을 당한 '킬링 필드'의 현장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인간의 허무한 삶이 부처의 미소와 오버랩된다.
앙코르 유적지의 모태인 톤레사프 호수를 빼놓을 수 없다. 캄보디아 정부에서 이 곳을 돌아보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호수가 아니라 거의 바다이다. 10명 남짓을 태울 수 있는 유람선이 다닌다. 호수의 한 가운데에 들어가면 사면이 수평선이다. 밋밋하다. 대신 호수의 지류에는 볼 것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수상족이다. 물 위에서 태어나 죽을 때까지 물 위에서 산다. 배를 띄워 집을 만들고 그 속에서 생활한다. 물 위에 학교, 병원, 슈퍼마켓은 물론 가축의 우리까지 있다. 수상족의 아이들은 걸음마를 배우기 전에 노 젓는 방법부터 배운다. 아이들이 노를 젓고 등교하는 모습이 보인다. 독특한 풍광이다.
/시엠리에프(캄보디아)=글·사진 권오현기자 koh@hk.co.kr
● 캄보디아 여행법
'킬링 필드'로 먼저 인식되는 나라 캄보디아. 참 많이 싸우고 많이 죽었다. 나라 바깥에서는 여전히 총성이 들리는 것으로 인식하지만 평화가 정착한 지 오래다. 캄보디아는 입헌군주국이다. 시아누크 국왕과 훈센 총리가 나라를 다스린다. 폴 포트가 양민을 학살하던 사회주의 정권에서는 국왕이 나라를 떠나야 했다. 시아누크 국왕의 망명지는 북한이었다. 그래서 북한과의 사이가 여전히 각별하다.
땅덩이는 대한민국 2배의 크기이다. 수도는 프놈펜이고 제2도시는 바탐방이다. 앙코르 유적지가 있는 시엠리에프는 제3의 도시이다. 국민의 90%가 불교를 믿는다. 우리나라와의 시차는 2시간.
비자는 캄보디아 현지에서 받는다. 여권, 사진 1매, 비자신청서를 제출하고 20달러의 수수료를 내면 된다.
시엠리에프에는 국제공항이 있지만 한국과의 직항노선이 없다. 대한항공과 베트남 항공이 공동 운항하는 하노이-시엔리에프 노선이 있다. 대부분의 여행 상품이 인천-하노이, 하노이-시엔리에프 항공편과 연계되어 있다. 베트남 북부의 관광지인 하롱베이를 거쳐 앙코르 유적지를 돌아보는 상품이 110만 원 대에 판매되고 있다.
자유 여행사 (02)3455-8938, 하나투어 2127-1139, 롯데관광 399-2301 등에서 취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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