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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민족의 축제, 개천절 되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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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민족의 축제, 개천절 되새기자

입력
2003.10.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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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절이 눈 앞이다. 놀고 즐기는 날로 전락한 개천절을 앞두고 이 날의 의미를 되새겨보자는 주장은 공허하게 들린다. 그렇지만 대립과 반목으로 얼룩진 우리 사회에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민족의 의미가 퇴색하는 시대에 대아적 각성의 지침은 과연 요원한 것인지, 나아가 동북아 시대를 넘어 글로벌 사회를 향해 가는 우리의 여정이 올바른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 개천절의 의미를 되새기는 작업은 필요하다.우리나라 4대 국경일 가운데 3·1절, 제헌절, 광복절은 일제로부터 독립을 쟁취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이다. 그런데 유일하게 개천절은 우리 민족의 전통명절을 계승한 것이다.

개천절이 10월 3일로 정해진 것은 1909년 대종교 신자들에 의해서 였다. 조선왕조가 평양의 숭령전과 구월산의 삼성사에서 단군에 제사를 지내왔지만 날짜가 정해져 있지는 않았다. 대종교는 종교의식을 위해 단군이 이 세상에 강림한 날을 정한 것이다.

개천절은 동북아 전역에 존재하던 우리 민족 고래의 제천축일로서 한민족의 정신사와 그 맥을 같이 한다. 그 원형이 되는 상고시대 천제(天祭)를 시작으로 고구려의 동맹(東盟), 부여의 영고(迎鼓), 예의 무천(舞天), 백제의 교천(郊天), 신라의 상달제로 이어져왔다.

개천문화의 정신적 토대라 할 수 있는 단군정신은 국난 때에 저항과 단결의 요소로 크게 작용해왔다. 삼국이 분열하여 대립으로 치달을 당시 통일의 명분으로 작용한 것이 단군 정신이었고, 몽고의 침략으로 고려의 국권이 흔들릴 때도 민족혼을 일깨워 준 동인 역시 단군 정신이었다. 조선왕조가 중국을 상대로 자주적 위상을 내세울 수 있었던 것도 이 정신 속에서 기인한다.

구한말에는 홍암 나철이 단군신앙을 부활하여 개천절의 의미를 재천명했으며, 민족의 암흑기였던 일제치하에서는 대종교도들이 중심이 된 만주의 독립군들도 매년 개천절에 제천을 올려 조국광복의 의지와 배달민족의 번영을 기원했다. 또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개천절을 국경일로 의결하고 해마다 경하식을 성대하게 봉행해 독립의 의지를 다졌다.

개천절은 우리 민족문화의 범주를 넘어, 전인류의 훌륭한 문화에너지로서 부족함이 없다. 험난한 전정(前程)에, 민족의 통일시계와 민족문화의 나침반을 보고자 함은 허황된 꿈에 불과함인지. 개천절의 의미를 되새기며 우리 모두 성찰해 볼 일이다.

김 동 환 국학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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