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애호가인 이모(50·경기 고양시 일산구)씨는 지난 해 3월 골프연습장에서 "5만원만 내면 수도권 퍼블릭 골프장에서 매주 골프를 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귀가 솔깃했다. 수소문 끝에 브로커 홍모(44)씨와 연락이 닿은 이씨는 부킹 대란 속에서도 매번 5만원을 주고 홍씨에게 의뢰, 18개월 동안 40회나 N골프장에서 골프를 즐길 수 있었다.프로그램 조작으로 골프 예약 선점
골프인구가 급증하면서 골프장 부킹이 까다로워지자 부킹을 대가로 뒷돈을 챙기는 경우가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다. 수백만원을 받고 회원권이 없는 골퍼들에게 회원제 골프장 예약을 성사시켜주는 전통적인 브로커에 이어 최근에는 퍼블릭 골프장의 인터넷 예약 프로그램을 조작, 특정인만 예약을 성공시켜준 뒤 돈을 챙긴 일당이 경찰에 검거됐다.
경찰청은 30일 자체 개발한 프로그램으로 퍼블릭 골프장의 인터넷 예약시스템을 마비시킨 뒤 특정인의 예약을 도와주고 수수료를 챙긴 이씨 등 4명을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대기업 전산업체에 근무했던 이씨는 지난 해 3월 골프장 예약 시스템에 대량의 예약 시도를 보내 골프장 홈페이지를 마비시킨 뒤 특정인의 예약을 성사시켜주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이씨는 "수익금의 30%를 나눠 갖자"며 전 직장동료 조모(43)씨 등 3명을 고용, 수도권 일대 골프장과 골프연습장에서 560명의 골퍼들을 모아 총 2,370건의 부킹을 성사시켜주고 1억여원을 받아 챙겼다. N골프장의 경우 홍씨를 통해 부킹을 한 25명은 18개월 동안 1인당 25회 이상 골프를 친 반면 일반인 골퍼 7만명은 같은 기간 평균 0.28회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N, B골프장은 회원들의 빗발치는 항의에 시달려야 했다.
'부킹' 가격 최근 2배 이상 급상승
기존 부킹 브로커들이 취급하는 일명 '부킹권'도 최근 가격이 2배 이상 급상승하는 등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일부 골프장 회원권 거래소 홈페이지 등에는 '골프장 부킹 대행', '긴급 부킹' 등의 배너광고가 버젓이 게재돼 있다. 브로커들은 "일요일 오전 7∼9시, 수도권, 중상급 골프장의 경우 200만원은 기본"이라며 "겨울을 앞둔 10월의 경우 부킹 대행료가 2배 이상 치솟았지만 상승세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골프장경영협회 관계자는 "현행 체육시설 설치 및 이용에 관한 법률로는 회원 대신 다른 사람이 골프장에 오는 것을 규제할 근거가 없다"면서 "공급부족 탓만 하지 말고, 당장 외국처럼 골프장 이용자 실명제를 도입해야 부킹 브로커의 난립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원수기자 noblelia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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